언제 이만큼이나 산 것인가.

(인생의 역사, 신형철(3/3)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2944866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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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큐브로 만든 집'(단편 애니메이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래쪽에서 위로 점점 물이 차오르는 일이며 그렇게 한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지난 시간들은 수몰되는 집처럼 그 형태 그대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그 과정을 막을 수는 없고 다만 잠수하듯 상기해볼 수만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한 층씩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그는 역순으로 과거와 재회한다. 아직 아내가 살아 있던 때를, 딸이 결혼할 남자를 데려왔던 때를, 어린 딸이 식탁 주위를 뛰어다니던 때를, 그리고 아직 도시가 물에 잠기기 전 그와 아내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던 때를. 어느새 바닥(1층)까지 내려와서 올려다보니 자신의 집은 너무 높고 멀다.


언제 이만큼이나 산 것인가.

(신형철, 인생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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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hQ75OV4VRs


12분짜리 짧은 애니메이션이다. 파도소리, 갈매기 울음이 멀리 들린다. 할아버지가 홀로 산다.


세월이 지날수록 기억의 옛집은 물속에 잠긴다. 사람들은 잠긴 집 위에 새로운 기억의 집을 짓는다. 시간이 지난만큼 물은 조금씩 올라오고, 사람들은 또다시 새로운 층을 올린다. 세월이 지나 죽음을 맞이하면 집은 물속에 잠긴다. 아름다운 많은 집들이 물 속에 잠겨 있다.


할아버지가 담배파이프를 물 속으로 떨어뜨렸다. 찾으려 잠수해 들어간다. 낡은 액자로만 걸려있던 추억의 장소들은 물 속에 그대로 있었다. 아내의 죽음, 딸 아이의 가족, 딸 아이의 결혼, 아기가 태어났을 때, 아내와의 결혼, 연애, 어린시절. 모든 것들은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언제 이만큼이나 산 것인가.


할아버지는 다시 물 위로 올라와 자신을 위한 저녁을 차린다. 홀로 앉은 식탁에 죽은 아내를 위한 와인잔도 준비했다.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날 것이고 집은 이제 물속에 잠길 것이다. 사랑, 감동, 실패가 담겨 있는 기억의 집은 떠나는 순간까지는 떠날 수 없다. 잠기더라도 아름다운 집으로 물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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