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의 가르침)(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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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 주변에는 부자가 없다. 부모가 부자였던 적이 없었다면 부모는 당연하게도 부자의 삶을 모른다. 그러니 자녀에게 부자의 삶을 알려줄 수 없다. 삶은 팍팍해 단편적인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생활하게 된다. 부를 통찰을 할 여력이 없으니, 가난을 간단히 합리화한다. 부모, 학력, 직장이 좋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텐데라고 되뇌인다. 부자가 절대로 될 수 없었던 환경이었다며 자녀 옆에서 푸념한다. 최선을 다했으니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자녀는 그것을 배운다. 가난한 부모는 부에 대해 알지 못하니, 뉴스에서 보이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업을 가져야한다는 하나마나한 훈계를 한다. 부모의 희생이 있다해도 안타깝지만 상당수는 좋은 대학과 좋은 직업에 실패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이 아니어도 부자가 될 길은 여럿이 있건만, 가난한 가정의 자녀는 부모가 했던 '가난의 합리화'를 자신의 자녀에게 보여준다. 그렇게 가난은 세습된다.
가난할수록 부자의 생각과 행동을 배워야 한다. 가난의 주변에 부자가 있을리 없으니, 책을 읽고, 여러 글과 영상을 찾아서 배워야 한다. 부모님 때에 비하면 부자의 말, 글, 행동, 대화를 접하기가 수월한 시대아닌가. 스스로 부와 실력을 쌓아갈수록 조금 더 가깝게 부자를 접촉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직은 부자가 아니지만, 그럴수록 부자의 마음을 더 느낄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행복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부는 상대적인 것이다. '잘 사는 것'이 '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모두 잘 사는 것은 논리모순이다. 그러니 '내가 먼저'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잘 살려면, 나의 무언가를 주고 다른 사람이 자발적으로 나에게 대가를 지급하도록 해야한다. 교환의 과정에서 부는 축적된다. 교환은 결정의 결과다. 부자가 되려면 현명한 결정을 해야한다. 현명한 결정을 하려면 당연하게도 현명해야 한다.
행복과 부의 관계는 무엇일까. 문장으로 써내기 어렵지만,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두 문장이 떠 오른다.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문학동네 32쪽
김승호
하늘은 지붕 위로 (폴 베를렌, 세이노 번역)
하늘은, 저기, 지붕 위에서,
너무도 푸르고 참으로 조용하구나!
종려나무는, 지붕 위에서,
잎사귀 일렁이고.
종은, 우리가 보는 하늘 속에서,
부드럽게 울리고.
새는 우리가 보는 나무 속에서
애처롭게 울고.
이런, 하나님 맙소사, 삶은 바로 저기에.
단순하고 평온하게 있는 거구나.
이 평화로운 웅성거림은 저기
마을에서 들려오는 것.
- 너는 뭘 했니, 오, 너 말야, 바로 여기서
계속 울고만 있는.
말해 봐, 너는 뭘 했니, 너, 바로 여기 있는,
네 젊음을 갖고 뭘 했니?
(폴 베를렌이 감옥에 갇혀, 철창밖에 비치는 풍경을 보며 쓴 시라고 한다. '삶은 바로 저기에'에 뭉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