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인으로서 판단자들

(검경수사 잘 받는 법, 노인수)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056214733


수사와 재판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해자(피의자, 피고인), 피해자, 제3자, 변호인, 경찰, 검사, 수사관, 판사 등등.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피고인에게는 신변이 걸려 있는 일생의 사건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피의자/피고인만 그렇다는 것이다. 나머지 등장인물은 일을 하는 중이다. 일을 하는 중이므로 24시간 사건에 매달리지 않는다. 생활인으로서 조직내에서 일하는 중이므로 결재받고, 지시받고, 평가받는다. 경찰, 검찰, 법관도 생활인이므로 양심만으로 움직일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피의자/피고인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당연하게도 경찰, 검찰, 법관이 일하기 쉽게 해줘야 한다. 어떻게 해야 그들이 일하기 쉬운가. 사실 주장하면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유리한 증거를 모으고, 불리한 증거를 주지 않아야 한다. 흘리지도 말아야 한다. 논리를 주장하면서 판례를 첨부하고, 피해자와 합의하고, 반성하면 된다. 생활인으로서 판단자들은 피의자/피고인이 제출한 것을 배척하는 것도 힘들고, 피의자/피고인이 정리해준 사실, 논리, 법리, 판례에 먼저 눈길이 가고, 생각이 거기에 맺힐 수도 있으며, 자신의 법문서에 쓸만한 부분이 있는지 읽어볼 것이다.


피의자/피고인은 눈치가 빨라야 한다. 단어, 조사, 어순, 문장, 눈빛, 태도를 보아가며 심증을 읽어내야 한다. 판단자들의 심증을 읽어 재빨리 태도를 전환할 재치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판단자마다 심증의 정도, 업무방식과 태도가 모두 다를테니 피의자/피고인의 눈치에 기준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이것은 경험과 감각의 부분이다


없는 죄는 만들어지지 않지만, 없었던 죄명은 만들어질 수 있다. 수사의 범위는 고정되어 있지 않아 넓고 깊어질 수 있다. 기존의 사실에 대해서도 새로운 법령을 적용해서 죄명을 늘리거나 변경될 수 있다. 배경으로 깔려 있던 사실도 범죄사실로 승격될 수 있다. 그러니 판단자와 감정적으로 대립할 필요는 없다. 법문서는 광야에서 외치는 선언서가 아니다. 단계별 필요한 문서가 있고, 보고받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법문서는 시기, 보고받는 사람,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생활인으로서 판단자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너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느냐'고 나에게 물어볼 수 있겠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책을 읽고 차분히 글로 쓰며 생각하니 그렇다는 것이다. 예전에 양과에 합격한 선배 한 분이 계셨는데 구속이 되셨다 나중에 무죄로 풀려나셨다. 그 분이 하셨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구속되면 지능이 30%가 된다.

그러니 앞뒤 안 맞는 말 한다고 너무 다그치지 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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