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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Apr 29. 2023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1/4)

https://blog.naver.com/pyowa/223088752742


노화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노인이라해도 죽을 때까지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이야기다. 이런저런 사례를 읽으며 돌아가신 할머니, 나이드신 부모님, 나의 노년을 대입해보며 읽게 된다.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 부모님의 상태는 어느 정도일까.



노화와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어느순간 독립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노인들은 죽음보다도 험한 꼴을 보일까봐 그것이 더 무섭다고 한다. 노인들도 처음 늙어보는 것이니 그 순간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멀쩡하던 친척이나 친구가 거동하지 못하거나 감각을 잃게 되면 당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날 것이다. 걷지 못하면, 먹지 못하면, 대소변이 힘들면, 감각이 둔해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할 것이다. 생각도 조리있게 안 되고, 잠만 쏟아지면 어떻게 할까. 헛것을 보았거나 헛소리를 들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슬퍼질까.



그렇더라도 죽는 그때까지는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싶을 것이다. 옷입기, 씻기, 식사, 가구, 청소, 운동, 병원 등 모든 것 말이다. 노인이 독립생활을 할 수 없는 경우, 많은 경우 안전을 위해 요양원을 택한다. 노인들은 끝까지 버티다 대안이 없으면 어느순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안전을 대가로 삶에 대한 대부분의 결정권을 시설에 반납한다. 안전하게 늙어가고 노화는 쌓여 결국 죽음을 맞는다.



책에서 등장하는 할머니는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고 말한다. 늙었다는 죄로 죽을 때까지 요양원에 머물러야 하다니, 그러다 중환자실 산소호흡기 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다니, 눈물이 핑도는 일이다.



늙어도 살아있으므로 자신의 세계가 있다. 젊은이의 눈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세계라하더라도 자신의 세계에 사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있겠는가. 자신의 세계를 타인에게 설득시킬 필요가 있는가. 무력하고 종속된 삶의 계속이라면 '안전'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도스토옙스키는 ‘백치’에서 처형 직전 5분이 남았다면 2분은 작별하고, 2분은 삶을 돌아보고, 1분은 주위를 둘러보겠다고 했다. 나도 죽을 때 2분은 가족을 돌아보고, 2분은 내 삶을 돌아보고, 1분은 주변의 물건과 색과 빛을 느껴볼 생각이었다. 생각해보니 중환자실에서 약에 취해 산소호흡기를 꼽고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죽음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죽어버릴 것만 같다.



이어령 교수님의 마지막 인사가 생각난다.


https://youtu.be/5RNMEVaMu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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