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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Apr 30. 2023

산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2/4)

https://blog.naver.com/pyowa/223089598386

https://blog.naver.com/pyowa/223088752742


언제까지나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어렵더라도 꼭 그렇게 살고 싶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불편하고, 위험하고, 쓸데 없는 것들과 함께 있는 것 같아도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고 싶다.

 


다들 같은 마음이겠지. 이상하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는 ‘자유’보다는 ‘안전’을 선택한다. 그들의 의사는 고려요소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기 이름으로 자신을 위해 결정한다. 이곳이 ‘어머니에게 편하겠어’라는 말은 이곳에 어머니를 맡기면 ‘내 마음이 편할까’의 다른 표현 아닐까. 

 


산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판단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싶다. 나의 안심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뜻이 우선아니겠는가. 요양원의 삶을 헝겊인형과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무의미한 시간의 반복보다는 쓰러지더라도 익숙하고 소중한 것들과 살다가 죽고 싶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너무 오래살게 되었다. 선택받은 몇몇만이 누렸던 장수를 대부분 누리게 되었다. 많은 노인이 독립생활을 할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한다는 얘기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때 나의 자유와 사생활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계속 생각하며 살아야할 문제다.

 


삶이 의미는 변해간다. 영원히 반복될 것 같던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노인이 되었거나, 큰 실패를 겪었거나, 크게 아팠을 때 같은 경우다. 당연한 내일이 없다면,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때서야 모든 것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가족의 체온, 가까운 사람들과 만남, 깔깔 웃음소리, 경쾌한 산책, 코끝을 당기는 꽃향기, 바람의 감촉 같은 것 말이다. 크고 먼 것보다는 작고 가까운 것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당연한 것은 없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에겐 얼마의 시간이 남았을까. 작고, 가까운 것을 집중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노인이 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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