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의 달리기 이야기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120320663


오랜만에 10킬로를 달렸다. 1시간 20분이 걸렸으니 달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허리를 다친 이후로는 박차며 달리면 허리에 통증이 온다. 천변에 나가면 팔을 흔들고, 성큼성큼 뛰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올라오지만 허리통증이 떠올라 뛰지 못한다. 어느정도 뛰면 조금씩 걷는다.



군인이었으니 매년 체력검정을 했다.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모두 내가 잘하는 종목이다. 언제나 특급이었다. 축구, 배드민턴, 골프 이런 걸로 측정을 했다면 나는 언제나 불합격이었을 것이다. 달리기는 벌써 특급이었지만 더 잘하고 싶어져 연습을 꾸준히 했다. 숨이 차오르는 느낌도 좋았고, 뻐근해지는 허벅지도 간질거리듯 좋았다.



달리면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내가 달리는 이유다. 머리가 맑아지고 새로운 생각이 퐁퐁 솟아난다.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있다한들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생각들이다.



달리면 계절을 느낄 수 있다. 목련 속을 달리다, 벚꽃 속을 달린다. 라일락 향기가 코끗을 당기고, 개구리가 귀를 꽉 채운다. 풀내음이 천변을 채우고 날파리가 가로등 주변에 가득해진다. 비를 맞기도 하고, 우의를 입고 달려도 본다. 노란 은행과 붉은 단풍 속을 달린다. 낙엽 속을 뛰다가 어느순간 발 밑에서 뽀드득 거리는 눈을 본다.



달리기 대회에 가면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결과야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다들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표정이다. 나이도, 성별도 상관없이 격려하는 눈빛을 주고 받는다. 살짝 들떠있는 밝은 기운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하루키는 매일같이 글을 쓰고, 달렸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https://youtu.be/HzdK25POXwo



<49세 러너의 달리기 이야기> 중 일부



사람들이 기록에 대한 비결을 물을 때가 있다. 꾸준함이다. 꾸준히, 즐겁게, 최선을 다해 달렸다. 일상에 변화가 생겨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달리는 순간 만큼은 최선을 다해 달렸다. 매일매일 내가 계획한 훈련은 완료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 방학 때 애들이 까르르 웃으며 놀던 모습이 많이 생각난다. 그때처럼, 지금처럼, 앞으로도 발고 긍정적이고 즐겁게 살자고 남편, 딸,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달리는 자체가 좋다. 달리면 잡념이 없어진다. 힘들 때 자기만의 동굴 속을 파고들려고 할 때도 달리기는 안 좋은 생각에 몰입하지 않게 해준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건강해진다. 달리기를 해서 갱년기, 공허함, 우울감을 느낄 시간이 없다. 달리면서 4계절의 변화를 보며 감탄한 적이 많다. 활짝 핀 벚꽃을 보면 팝콘이 튀는 거 같았고, 눈길을 달릴 때 뽀드득 소리도 좋았고, 비를 맞고 달리면 시원하고 후련했다. 장소를 바꿔가며 달리면 더 재밌었다. 풍경이 바뀌면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마라톤 대회는 분위기가 좋다. 사람들이 활기차고 밝아 보인다. 술렁술렁하는 분위기 속에 있으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힘든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뛴다. 멈추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한다. 끝까지 달려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대회장에서 같이 달리는 사람들 보면 자랑스럽다. 힘들게 꾸준히 달렸다는 걸 나도 알기 때문이다. 어린 친구들은 아직 인생의 어려움을 많이 겪지는 않았을 텐데 마라톤을 하는 걸 보면 대견하고 칭찬해주고 싶다. 어르신들은 존경스럽다. 나도 그렇게 계속 달리고 싶다. 오래 달리고 싶다.



지금까지 보통의 삶을 살았다. '어떤 걸 성취해야지' 이런 것도 없었다. 목표를 정하고 사는 건 내 삶의 방식과 달랐다. 달리기를 하고 달라졌다. 희미한 목표가 생겼다. 건강과 기록,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 달리기가 나를 앞에서 끌어준다. 그 목표들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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