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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un 11. 2023

사당동 수퍼 아줌마

(다정함은 덤이에요. 봉부아)

https://blog.naver.com/pyowa/223122011402



봉부아님의 책이다. 봉천동 부자 아줌마의 10년간 편의점 알바기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편의점에 관한 소설에 '불편한 편의점'이 있다면, 편의점 에세이는 봉부아의 '다정함은 덤이에요'다.


봉부아님 이야기를 읽으며 48세 부터 오랫동안 슈퍼를 하셨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서울로 상경한 부모님은 이런저런 일용직을 하시다가 슈퍼를 열게 되었다. 말이 슈퍼지 10평도 되지 않는 작은 가게였다. 가게는 사당동 우성,신동아, 극동 아파트 입구에 자리 잡았다. 30년전 어디에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슈퍼였다. 전화번호가 참 좋았다. 오구서 사오사오(594-4545). 와서 사세요.


어머니는 슈퍼 아줌마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가 7시도 전에 가게 문을 열고 밤 12시가 넘어 문을 닫았다. 가게는 작았지만, 그때의 수퍼가 다 그랬듯, 과일도 팔고, 파라솔피고 맥주도 팔고, 공중전화, 커피자판기, 담배 없는 게 없었다. 없는 게 밝혀지면 바로 떼어다 놓았다. 바코드 같은 건 없었을 때니 가격은 어머니 머릿속에 있었다. 다닥다닥 빌라촌이어서 다들 가난했지만, 다들 가난했으므로 서로 허물이 없었다. 손님이라기보다는 동네사람들이었다. 파라솔 밑에서 같이 맥주도 마시고, 아이들도 수퍼앞에서 놀았다.


어머니는 집안 경제를 꾸리고, 집안 일도 도맡았다. 평일에는 평일대로 바빴고, 주말이면 주말이라서 바빴고, 명절이면 명절 대목이어서 바빴다. 장사가 잘 되자 경쟁 슈퍼가 2개나 생겼다. 더 읽찍 열고, 더 늦게 닫고, 더 싸게 팔아야했다. 가게는 가게대로 더 바빴고, 집안 일 할 시간은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없는 형편인데도 삼남매는 모두 사립대를 갔고, 집안 일은 어머니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땐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건 어머니의 의무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집은 언제쯤 온가족이 모여 동그랗게 모여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속없는 생각이었다. 어린 내가 보아도 집은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었고, 막연히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당장에 뭘 돕거나 바로 돈을 벌거나 하지 않았다. 생각뿐이었다. 이기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마흔 여덟의 젊은 아주머니였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다. 잠이 부족하셨을 것이다. 티비보다가 스르르 잠을 자고 게으름을 피우며 일어나고 싶으셨을 것이다. 내가 그 나이 때 그랬던 것처럼. 나이가 들면서 신기한 것은 내 또래는 늙어보이지 않게 된다. 40대 후반의 아주머니를 보면 전혀 늙어보이지 않는다. 저렇게 젊었던 어머니가 작은 슈퍼에서 끝이 보이지 않았던 시간을 소모하셨다는 걸 알게 된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슈퍼의 시간도 끝이 났다. 


무학이셨던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 검정고시를 준비하시더니 중학교까지 마치고 고등과정도 다니셨다. 전두엽, 후두엽 써 있는 책을 공부하시더니 '요양보호사'가 되어 또 돈을 벌고 계신다. 쉼 없이 활동하시는 어머니가 놀랍다. 그런 어머니 덕에 이렇게 책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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