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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un 03. 2023

다음 배를 기다리는 사람

(feat. 꼬꼬무 흥남철수)

https://blog.naver.com/pyowa/223119535725



한국전쟁 화보집에 흥남철수 사진이 있다. 피난민들이 빽빽한 화물선이다. 안도와 걱정이 교차하는 얼굴이다. 모두 철수한 후 흥남항이 폭파되는 사진도 있다. 그들은 폭파된 흥남항을 뒤로 하고 거제도에 도착했다.  


'후퇴'라는 말이 주저되었는지 '철수'라고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급함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미해병은 장진호에서 중공군에 포위 고립되었다. 미군은 공중으로 보급을 이어가며 추위와 포위를 버텨냈고, 중공군은 포위를 하면서도 보급이 어려워 추위와 배고픔에 죽어갔다. 미군은 흥남으로 퇴각하면서 많은 희생을 치뤘지만, 중공군도 포위하면서 엄청난 병력 손실을 안았다. 중공군 병력손실은 미군의 4배에 달했지만, 중공군은 병력대비 전투력을 4:1로 계산하고 있었으므로 중공군의 패배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결국 퇴각했고, 교두보를 상실했으며, 막대한 군수 지원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미군의 패배라고 할만하다.



중공군의 전투력은 급격히 약해져 후퇴하는 미국을 제대로 공격할 수 없었다. 그렇더라도 후퇴는 다급한 일이다. 흥남항에서는 최종 퇴각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주변의 모든 병력, 무기, 장비가 모여들었다. 피난민은 그것들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모여들었다. 가족이 달린 문제였고,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피난민들은 간절했고 치열했다. 미군은 일부 군수품을 포기하고 피난민을 태우기로 했다. 10만 명이 미군의 배를 타고 거제도에 올 수 있었다. 



누군가는 올라탔고, 누군가는 다음배를 기다렸을 것이다. 이 배가 마지막 배라고 했겠지만, 피난민들이 돌아갈 곳은 없었다. 이러나 저러나 죽기는 매한가지였다. 중공군은 흥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미군은 연료, 장비, 탄약, 무기를 중공군에게 줄 수는 없었다. 흥남항을 이용하도록 둘 수도 없었을 것이다. 미군은 후퇴중이지 않은가.



마지막 배가 흥남항에서 조금씩 멀어지자. 구축함의 포신은 움직였고, 좌표대로 함포사격을 시작했다. 좌표는 흥남항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엔 연료, 장비, 탄약, 무기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다음 배를 기다리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김훈 선생은 소설 '공터에서'에서 흥남철수를 담담히 써 내셨다. 섬뜩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마지막 폭격기들이 항모로 돌아왔다. 

항구 안에 남아 있던 구축함이 16인치 포로 흥남부두를 부수기 시작했다. 

함포는 해안에 쌓인 탄약과 중장비를 부수고 접안 시설을 부수었다. 


함포가 부두를 부술 때 민간인들은 부두에 모여 있었다. 

불길과 연기에 휩싸여서 부두도 산맥도 보이지 않았는데, 연기 속으로 포탄은 계속 날아갔다.

(공터에서, 김훈)



https://youtu.be/c0YeXUZLu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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