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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ul 06. 2023

그런데 모자가 여기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공포, 체호프 단편선)

https://m.blog.naver.com/pyowa/223148349423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를 즐겨 들었는데, 김영하 작가가 팟캐스트를 닫았다. 저음의 김영하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방법이 없었는데, 우연치 않게 '안톤 체홉'의 '공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작가는 아마추어일수록 표현, 문체에 매료되고, 프로 캐릭터와 구성에 비중을 둔다고 했다. 나는 표현과 문체에 더 매료된다.​


'공포'에는 4명이 등장한다. 화자, 농장주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부인 마리야 세르게예브나, 그리고 부랑아 '40인의 순교자'다. 사랑하지 않는 부부가 있다. 화자와 부인은 서로 호감을 느끼며 대화한다. 3명이 무대를 끌고 간다면, '40인의 순교자'는 까메오처럼 등장했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무대 소품으로 모자하나가 있다.​


'40인의 순교자'는 이야기에 큰 변수가 될 듯 될 듯 주변을 맴돈다. 예측이 되지 않는 캐릭터이므로 끼어든다면 이야기도 예측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곳곳에 등장해 이야기에 강력한 긴장을 준다. '40인의 순교자'는 긴장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는다.

모자도 언제나 무대위에 놓여 있다. 화자와 부인은 결국 잠을 잔다. 부인이 방을 떠나가고 있는데, 남편은 모자를 가지러 화자의 방에 들어간다. 부인과 남편은 마주친다. 부인은 싸늘하게 남편을 스쳐지나간다. 그때 안톤 체홈이 개입해 말하는 것처럼 화자가 말한다.​


'그런데 모자가 여기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삶은 이해되지 않는다. 모자가 갑자기 역할을 하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주연이 될 수도 있었던 '40인의 순교자'가 아무런 역할도 사라지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햄릿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 수 없으니 죽기가 두렵다고 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공간에서도 알 수 없는 것 투성이고, 시간이 지나도 이해되지 않는다. 주변의 무엇이 내 삶의 변곡점이 될런지 알 수가 없다. ​


삶은 알 수  없다. 그러니 두렵다. 더 큰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무료하게 현재의 두려움을 반복한다. 그저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며 산다. 공포다.


https://m.blog.naver.com/pyowa/222235887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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