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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ul 04. 2023

인생은 여러 삶이다. 굴드도, 우리도.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미셸 슈나이더)(2/2)

https://blog.naver.com/pyowa/223146558879


음악은 만들어 낸 소리의 조합이다. 인간의 의지가 실린 파동이다. 음악은 지나온 파동을 기억하게 하고, 다가올 파동을 예측하게 한다. 그것은 멜로디일 수도 있고, 강약일 수도 있고, 리듬일 수도 있겠다. 


 

삶이 설명되지 않듯이, 음악도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들어도 모두 다른 느낌, 다른 감동일 것이다. 이유는 물론,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제대로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굴드는 50년을 살다 죽었다. 짧은 생이었다. 연주회의 인간으로 살다 32세부터 스튜디오의 인간으로 살았다. 청중에 의해 연주자가 흥분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청중을 의식한 연주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연주자는 보여주기보다는 들려줘야하며, 화려한 연주기량보다는 정확하고 반복적인 타건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굴드의 결단은 극도로 이례적이었고, 굴드는 세상에 살고 있었지만, 세상에는 속하지 않은 채 살다 죽었다. 

 


인생은 여러 삶이다. 한 인간이어도 존재하는 형식은 다양(divisual)하며 이 모든 것의 교집합이 결국 개인(indivisual)이다. 인간은 여러 삶을 살다가 결국 하나의 몸으로 동시에 죽는다. 

 


여러 삶마다 각자의 문제가 있고, 보람이 있고, 사랑이 있다. 살아가다보면, 내 삶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생각할 여유나 시간마저 없다. 이해되지 않고, 후회로운 것 투성이다. 평온한 시간보다는 안절부절하고, 대책없는 시간이 훨씬 많다. 나의 여러 삶 모두가 그렇다. 그렇더라도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한다. 알 수 없지만, 아는 것이 없지만 사랑한다. 알지 못하므로 사랑한다. 

 


굴드도 여러 삶을 살았을 것이다. 굴드 스스로도 자신의 여러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굴드의 짧은 전기를 읽고 굴드를 이해할 순 없다. 미셸 슈나이더도 굴드의 삶을 악보를 보여주는 보여줄 수는 없다고 했다. 책을 읽고 굴드의 음악을 모르지만 좋아하게 되었다. 굴드의 영상을 몇 편 보았는데 순간 좋아졌다. 앎이 사랑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모르니 사랑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담백하고 간결한 골든베르크 변주곡이 좋아졌다. 

 


미셸 슈나이더의 문장력도 놀랍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창실 번역가의 문장력도 대단하다. 문장구조가 살짝 낯선데도 번역체의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마침표와 생략을 자주 사용한다. 문장이 턱 끊어지면서 긴장감과 여운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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