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서 살아남기)(7)
https://blog.naver.com/pyowa/223104638256
<속지 말자! 그들은 한통속이니까.>
감사관은 우리 동료 중 한 명이다. 같이 커피를 마시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 직장 동료다. 지금은 감사관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직전에 나와 같은 사업부서 실무자였고, 앞으로 감사관을 보직이 끝나면 다시 사업부서 실무자가 될 것이다. 감사원이나 수사기관처럼 다른 기관에 근무하는 것이 아니니 우리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공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감사가 시작되면 감사관이 배정된다. 피조사자와 입사 동기일 수도 있고, 근무연이 있울 수도 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다. 감사가 강하게 들어오면 조사받는 입장에서야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고, 학연, 지연, 근무연을 통해 사건의 경과와 방향을 알아보려 한다. 뭐라도 기대고 싶고, 기도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여건이 된다면 사건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바꾸고 싶기 마련이다.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피조사자와 반대의 노력을 할 것이다.
감사관에게 직접 묻는 사람도 있고, 돌려 묻는 사람도 있고, 슬쩍 떠보는 사람도 있다. 사건이 끝난 다음에 묻는 사람도 있다. ‘끝나서 말인데’라고 시작하면서 말이다.
‘왜 솜방망이 처벌을 했느냐’
‘왜 그렇게 중하게 처벌했느냐’
‘가해자는 뭐라더냐’
‘피해자는 왜 신고했다더냐’
‘기관장님 입장은 어떠하시냐’
감사에는 신고자, 피해자, 가해자, 부서장, 기관장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기억이 서로 다르고, 각각의 입장이 대립되며, 직장의 명운을 걸고 치열하게 다툰다. 감사관은 감사가 끝나면 이들 모두와 함께 웃으며 근무해야하는 서글픈 운명을 가지고 있다.
감사관이 감사비밀을 누설하면 3년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공공감사법 제29조, 제40조). 형사처벌이나 징계를 떠나 감사관의 직장생활을 위해서도 감사사항을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하고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감사관의 말이 어떻게 흘러 들어가 어떻게 사용될지 알 수가 없다. 선의였더라도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감사의 공정성에 의심을 받을 수 있다.
감사관은 공감하되 판단하지 않는다. 감사관은 ‘자신은 실무자일 뿐 감사반장이 판단한다’고 말한다. 감사반장은 ‘자신은 현장책임자일 뿐 판단은 감사실장이 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감사실장은 ‘현장을 확인하지 못했으니 감사관의 보고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뱅글뱅글 돌아 판단자를 찾을 수 없게 만든다.
‘최종결정권자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는 협상의 원칙이 있다. 감사에서는 ‘판단자를 찾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관례가 있는 셈이다. 의사결정과정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진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조직 안에서 살아나간다.
용기를 내어 말을 걸면, 감사관, 감사반장, 감사실장 모두 당신에게 공감하면서 자신은 판단자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일단 기다려보시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들은 함께 감사보고서를 쓴다. 어떤 감사결과보고서이든지 하나의 판단에 따라 거칠 것 없이 써 내려간다. 감사관별로 의견이 쓰여 있지도 않다. 감사관 사이에 완전한 의견 일치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 사실을 조사하고, 진술을 확보하고, 유사사례를 확인하면서 감사의견은 한 방향으로 수렴한다. 혐의를 보강하는 증거를 찾고, 증거가 부족하면 방향을 바꿔가며 감사보고서의 방향이 확정된다. 그들은 한 몸뚱이처럼 움직이고 판단한다.
감사관은 직장인이다. 일 잘하는 직장인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깔끔한 일 처리가 핵심이다. 정의나 진실의 발견, 공직기강의 확립도 중요하지만 깔끔한 일 처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본을 채워나가다 보면 정의와 진실에 접근하게 된다.
감사에서 깔끔한 일 처리는 피조사자, 신고자, 피해자, 기관장으로부터 추가적인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업무를 처리하고, 앞으로 있을 인사조치, 징계, 수사, 재판에서 근거가 될 수 있도록 감사증거를 확보하고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감사관, 감사반장, 감사실장은 이 점에서 역할을 분담한 한 몸이다.
믹스커피를 같이 마시며 조심히 물어보면 공감 어린 눈빛으로, 그러면서도 난처한 듯 대답할 것이다. ‘저는 실무자예요. 판단은 윗분들이 하세요. 일단 기다려보시지요’
속지 말자! 그들은 한통속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