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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검투사는 빈손으로 퇴각하지 않는다.

(감사에서 살아남기)(6)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044229166



<날카로운 검투사는 빈손으로 퇴각하지 않는다.>



감사에는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종합감사, 재무감사 같은 것도 있지만, 특정사안에 대해 실시하는 특정감사도 있다. 정기감사는 지하철 2호선과 같아서 피감기관을 시간에 맞춰 한바퀴 돈다. 특정감사는 택시와 같아서 피감기관, 비위대상을 특정하고 최단거리, 최단시간에 밀고 들어간다.



비위가 발생한 경우 기관장은 여러 대응방안을 모색한다. 기관장이 특정감사를 선택할 땐 적정여부에 대해 감사관의 조언을 구하고 예상되는 기간과 결과, 필요한 인력 등에 대해 보고받는다. 기관장이 특정감사를 선택했다면 기관장은 칼을 선택한 것이다.



칼의 가장 위엄 있는 순간은 칼집에 있을 때다. 야심차게 칼을 빼었건만 무디고 녹슨 날이 보였다면 칼은 그 순간 쇠막대기가 된다. 장수는 더 이상 장수가 아니며, 조롱의 대상이다.



칼을 받은 감사관은 고민한다. 감사결과는 선언이 아니다. ‘감사결과보고서’라는 문서를 써내야 한다. 감사결과는 신고자와 비위자에게 통보되고, 보고서는 외부에 공개된다. 신고자는 ‘솜방망이’, ‘제식구 감싸기’라고 항의할 것이고, 비위자는 조사의 위법과 고압적 감사태도에 대해 문제 삼을 것이다. 기관장은 기관장대로 감사의 경과를 채근할 것이다. 상급기관이나 국회는 판단 근거자료 제출과 설명을 요구할 것이다. 감사관이 작성한 문서를 기초로 징계절차와 소송이 진행될 것이다. 고소고발로 이어져 수사가 시작될 수 있다. 감사관이 고소고발을 당할 수도 있는 문제다. 언론은 언론대로 자신의 색깔에 맞는 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의 공개를 요구할 것이다. 감사관은 이 모든 복병에 대응하며 나아가야 한다. 살아남아야하니까.



칼은 이미 꺼내어졌다. 기관장이 하명했건, 기관장의 승인을 받았건 감사관은 현장에 던져졌다. 현장에 오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제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다. 특정감사가 부적절하단 건의를 여러 번 했다 해도 그걸로 안위하고 있을 순 없다. 기관장을 설득시키지 못한 능력의 부족은 자신에게 있으므로, 성과를 내야 할 임무는 오롯이 감사관에게 있다.



감사관은 어디를 어떻게 조사해야 하는가 고민하고 움직인다. 감사는 양궁같은 활쏘기가 아니다. 신고자도, 비위자도, 언론도 대응하고 움직이고 공격한다. 사건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감사관은 직관, 순간적 대응, 놓치지 않는 기세를 발휘해야 한다. 날카로운 검투사처럼.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다. 빈손으로 돌아가려면 ‘빈손’을 성과로 포장해내는 능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어떻게든 성과를 들고 돌아가야 한다. 감사기간이 길어질수록, 투입되는 감사관이 늘어날수록, 상급기관의 관심도가 높아질수록 성과에 대한 부담은 점점 높아져간다.



대학시절 나폴레옹의 대군이 러시아에서 패배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전투에서 패배할 수는 있겠지만, 왜 추위와 굶주림에 떨다 죽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러시아군도 약해졌으니 프랑스로 후퇴하지 않은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나폴레옹도, 참모들도 빈손으로 프랑스로 돌아올 순 없었다. 빈손은 모두의 실각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희망 섞인 관측에 빠져들었다. 곧 전투가 끝날 것이므로 그때까지의 식량과 군수품은 충분하다고 안위했다. 이를 간파한 러시아는 싸워주지 않았다. 퇴각할 군수품마저 동이난 순간 후퇴는 선택지에서 사라졌다. 나폴레옹군은 총진군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군은 싸워주지 않았고, 나폴레옹군은 고립되고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갔다.



감사관이 특정감사를 시작했다면 그는 조금 날카로워져 있을 것이다. 예상보다 긴 기간동안, 예상보다 더 감사관을 투입해가면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면 그는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빈손으로 퇴각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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