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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관 바꾸어 주세요.

(감사에서 살아남기)(8)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128680328


<감사관 바꾸어 주세요.>


불공정이 예상되는 사람에게 판단 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다른 사례와 똑같이 판단을 하고, 충분히 근거를 제시해도 처분을 받는 사람은 불공정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공정한 것도 중요하지만, 공정해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재판, 징계, 감사, 과태료, 불허가 등 불이익한 처분에서의 공정은 다른 업무의 공정보다 더 신경써야 한다. 불이익 처분을 받은 사람들은 공정한 판단자였다면, 우호적인 판단자였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공정이 우려되는 법관의 경우 재판에 관여하면 안 된다. 이를 위해 형사소송법에는 제척, 기피, 회피를 규정하고 있다(형사소송법 제17조부터 제25조). ‘제척’은 법률상 당연히 임무수행을 하면 안 되는 것이고, ‘기피’는 재판을 받는 사람이 판사를 바꿔달라고 요청하는 것이고, ‘회피’는 판사가 불공정 요소가 있으니 스스로 재판을 피하는 것이다.

감사규정에 제척, 기피, 회피를 따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같은 취지의 조문은 있다. 감사관은 편견이나 자의적 판단으로 감사하면 안 되며, 개인적인 독립성 저해요인이 있으면 감사에 관여할 수 없다(공공감사기준 제8조 제3항, 제10조 제2항). 감사대상자와 개인적인 관계로 감사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거나 피감기관 업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경우에 관여하면 안 된다.

감사관이 누구냐에 따라 감사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조사대상 사실은 과거의 사실이니 고정된 것이고, 관련규정이나 문책규정 또한 고정된 것이며, 판례, 징계사례, 유권해석도 많이 있으므로 감사관이 바뀌어도 달라질 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사법절차에서 판사와 검사가 누구이냐가 중요하듯이, 감사관의 능력과 의지가 감사의 방향을 결정한다. 능력과 의지에 따라 조사하는 사실이 달라지고, 보강하는 증거의 강도가 달라진다. 무엇을 어디까지 떠들어 볼 것인지가 달라진다. 새로운 사실을 발굴해내어 문서로 보고하면 기관장이라 하더라도 없는 것으로 돌리기 어렵다.

배정된 감사관이 하필 피감기관이나 비위자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 감사관은 개인적 감정과 직업적 윤리를 구분된다고 말하겠지만, 인간의 심사가 어디 그런가. 똑같은 결과를 받게 되더라도 다른 감사관이 배정되는게 조금 더 원만히 감사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쉬움이 들게 마련이다.


감사관을 바꿔달라고 할 수 있을까. 명문의 규정은 없지만, 공공감사기준상 피감기관과의 이해관계, 감사관의 편견이나 자의적 판단 우려를 이유로 기피신청은 할 수 있어 보인다. 그렇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기피신청하지 말자.

아마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감사관의 공정성을 믿지 못하겠다는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일 감사관이 있겠는가. 감사관이 불필요한 분란을 피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상사에게 자신의 공정성이 의심받고 있음을 보고하고, 자신의 일을 다른 감사관이 하도록 하는 게 쉽겠는가.

어쩔 수 없이 기피신청을 한다면 감사관이 수용할 수밖에 없을 때 해야한다. 나의 입장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기피신청을 승인받아야 하고, 다른 감사관에게 일을 미뤄야하는 감사관의 입장에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입사동기라거나, 대학동기라거나, 직전 부서장이었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근무연이 있다는 정도의 기피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작은 조직의 감사관은 전 직원에 대해 안면이 있고 한 다리 건너면 근무연이 있기 쉽다. 이 정도 사유로 기피신청을 받아주면 앞으로 감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용기를 내어 기피신청을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떻게 흘러갈까. 감사관은 감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았다. 감사가 끝난 이후에는 무엇으로 트집 잡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사관은 더욱더 공정하고 엄정하게 증거를 충분히 곁들여서 감사할 것이다. 감정적 서운함 때문이 아니다.

감사관의 공정성을 의심한다는 접근은 피하자. 조금은 부드러운 방법을 찾아보자. 감사관의 공정성은 의심하지 않는데, 그동안의 관계로 대면은 서먹하고 부담스러우니 조사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느냐고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겠다. 해당 감사관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 아니니 받아들일 여지가 있고, 상사에게 보고하기도 여유롭다. 현장 감사관의 의견에 힘이 실릴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목적은 달성할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감사관으로 감사를 받을 수는 없다. 감사관도 자신이 원하는 때, 원하는 사건을 골라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관을 바꾸어주세요’라고 말한다면, 감사관은 말은 못하고 ‘나도 그러고 싶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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