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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못 믿어?

(감사에서 살아남기)(16)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092716653


<나 못 믿어?>


감사에서 신고자와 피신고자는 이해관계가 대립되어 있다. 감사관은 그 사이에서 증거로 입증되는 사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감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한다. 감사는 이렇듯 삼자가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진행된다.


감사대상은 대부분이 조직내부의 사람인데, 신고자이건, 피신고자이건 감사 이후에도 조직에서 계속 근무한다. 동료 직원들은 감사결과가 무엇이냐와 상관없이 이들과 앞으로도 근무해야 한다. 직원들이 비위의 내용과 결과가 궁금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사에서 비밀의 유지는 감사결과를 위해서도, 각 개인을 위해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비밀이 보장된다는 믿음이 없다면, 신고자는 제대로 진술하지 않을 것이고, 직장 동료들 또한 목격한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2차 피해로 마음의 상처가 깊어질 것이다. 피신고자는 사실이 아닌 내용, 과장된 내용이 마치 사실인 것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다투어 무혐의를 받았었도 돌아다니며 자신이 무혐의 사실을 말하고 말하고 다닐 수도 없다. 가해가 사실이더라도 법령에 규정된 처벌을 받으면 그 뿐이지, 직장 동료들로주터 비난의 눈빛을 받으며 살아가야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감사관의 비밀유지의무는 엄격하다.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 부패방지법, 청탁금지법, 이해충돌방지법,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자체감사기준에 규정되어 있다. 감사관이 비밀을 누설하면 징계처벌을 물론, 3년이하 징역, 이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공공감사법 제40조, 제10조)에 처하게 된다.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자체감사기준(제10조)도 비밀유지의무에 더하여 감사자료는 정당한 사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거나 해당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할 수 없고, 감사목적과 관련없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정당한 주의의무를 다하여야 한다고 규정고 있다. 감사관은 피해자, 가해자, 참고인 모두에게 관련자들에게 비밀유지를 강조하고, 다짐을 받고, 그들로부터 서약서를 받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진행되면 많은 사람들이 감사에 대해 이야기기 시작한다. 감사비밀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듯 보인다. 신고인, 피해자, 피신고인은 모두 감사비밀이 왜 지켜지지 않았느냐며 감사관에게 불만을 제기한다.


도대체 감사내용은 어디에서 흘러나가는 것일가.


누설자가 많다.


먼저 감사관이 묻고 다니기 때문이다. ‘절대 말하지 않겠다’라는 ‘서약서’를 받으면서 비위오 가장 밀접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묻고 조서를 받는다. 묻는 과정에서 타인이 진술한 내용이 당연히 포함되고, 감사의 방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받은 ‘서약서’의 개수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많이 누설한 당사자가 감사관일 수 있다. 조사과정에서 묻는 질문을 ‘비밀누설’이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피해자나 신고자가 조언을 구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피해자나 신고자는 감사를 받아본 적이 처음이다. 자신의 신고가 어떻게 흘러갈지, 감사는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기 마련이다. 조언자 역시 잘 모르는 분야이니 위로를 할 뿐 감사에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하지는 못한다. 피해자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또 다시 조언을 구한다.


피조사자도 조언을 구한다. 조언을 구하면서 자신의 억울함과 신고자의 허위부분, 과장부분, 평소의 근무태도까지 이야기한다. 신고에 이르게 된 불순한 동기까지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어느 조직에나 흔히 말하는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있다. 조금이라도 많이, 조금이라도 일찍 아는 것이 업무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엮어 상황을 그려낸다. 셜록 홈즈라도 된 듯 피해자, 가해자, 신고인에게 다가가 풍문으로 모은 내용을 맞춰 본다. 조언하는 듯, 공감하는 듯 떠본다. 어느 정도 모이면 풍문으로 들은 내용은 감사관에게 확인받고 싶어한다. ‘다들 알고 있던데, 이거 맞아?’하고 물어본다. 피해자와 피조사자를 위한다는 그들의 진정성은 변함이 없지만, 이야기하고 다닌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알아보려는 사람도 많다.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사람에 더해 공식적으로 알아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은 사사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누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담당과장, 인사업무담당자, 인사업무 과장, 기관장, 직장내 성폭력 상담자, 감사업무 관련자, 신고접수를 받은 조직(예를 들면, 노동조합) 등 많은 사람들이 감사 진행 경과를 알아보려 한다. 더 넓혀가면 기관별 직능대표자, 동기회 대표, 상급기관 인사담당자 등 무한히 확장된다. 일부라도, 절차 진행 정도라도 알려달라고 한다. 그들은 비밀을 캐내려는 것이 아니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 물어왔을 때 전혀 모르는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떻게 관심이 전혀 없냐며 핀잔을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심과 정보가 업무능력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감사정보에 민감하다.


보통의 잡담과 달리 감사에 관한 이야기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감사에 관한 풍문은 모든 이야기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굳이 알아보려 하지 않아도 감사에 관한 작은 이야기에도 귀가 솔깃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여러 이야기가 있다가도 진행중인 감사이야기가 나오면 화제는 감사로 옮겨간다. 작은 기관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잘잘못부터 후속 인사조치까지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 마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듯, 각자 품평한다. ‘잘못이 없네’, ‘잘못 했네’로 나뉘고 잠시 후에는 ‘절충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감사관들이 아무리 신신당부를 하고, ‘누설 시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서약서를 연거푸 받는다고 한들 이 모든 걸 막을 수가 없다.


나에게도 누군가가 감사중인 사안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감사 중이라 말씀드리기가 어렵다’고 공손하고도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 누군가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당연히 그렇지’라고 이야기하셨지만,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나 못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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