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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꼬이는 호기심천국들

(감사에서 살아남기)(15)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028274894


불구경, 싸움구경이 왜 재밌을까. 일단 우리집이 아니고, 내가 싸우는 게 아니다. 사건이 격정적으로 진행되며, 다음 단계를 예측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불을 끄는데, 싸움이 끝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불난 집에 모여들고, 싸우는 곳을 둘러싼다.

‘누구네 집이래?’, ‘어디서부터 불이 났데?’, ‘어쩌면 좋아’

‘왜 싸운데?’, ‘뭐 때문에 싸운데?’, ‘누구라도 말려야지’, ‘어쩌면 좋아’

그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궁금해하고, 안타까워하는 건 정상이다.


감사가 시작되어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안타까워한다. 비위의 배경에 대해 추론하고, 사건의 진행을 예측한다. 위로와 호기심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차올라 호기심천국이 된다.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감사반도 알려주지 않는다. 호기심천국들은 아름아름 알아보고 퍼즐의 빈 곳은 상상으로 채워간다. 셜록이라도 된 듯 호기심천국들에게 묻고, 알아낸 사실에 자신의 추론을 붙여 다음 호기심천국에게 전달한다. 전화로, 카톡으로, 메신져로 자신의 높은 안테나를 뽐낸다.


구경꾼들은 점점 늘어난다. 소설을 읽듯 사건을 관전한다. 추리와 맞으면 희열을 느끼고, 예측과 다르면 사뭇 놀란다. 연재 드라마를 보듯, 감사의 다음 단계를 기다린다. 호기심천국들은 비위자나 피해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정의론과 동정론을 오가며 말을 확대하고 다음 말을 만들어 낸다.


호기심 천국들 스스로는 정말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라고 한다. 자신은 호기심 천국이 아니라 업무상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 이유가 있어.’라며 자신의 ‘공공성’을 강변한다. 동기니까 알아야 하고, 우리 부서니까 알아야 하고, 인사부서니까 알아야 하고, 기관장이니 알아야 하고, 노조원이니 알아야 하고, 직급 대표이니 알아야 한다. 상급기관으로 가면 다시 똑같은 논리로 무한 확장된다. 호기심은 충족되는 만큼 더한 갈증을 만들고, 구경꾼은 점점 늘어만 간다.


그런데, 서운해하지 말자. 구경꾼들은 구경꾼일뿐이다. 아마 당신들도 다른 사람에 대한 감사가 시작되었을 때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니, 서운해하지 말자.


공감받고 싶을 것이다. 감사가 시작되면 자신의 억울함과 그럴만한 사정에 대해 말하고 싶을 것이다. 정의론과 동정론에서 모두 승리하고 싶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하는 사람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감사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공감과 위로가 아니다. 감사대상에서 빠지거나, 책임이 없다고 결론나거나, 선처를 받는 것이다. 구경꾼들은 거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구경꾼이니까. 그러니, 구경꾼에 서운해하지 말자.


하소연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친구와 동료는 나만큼 사건을 잘 알고 있지도 않고, 나만큼 고민하지 않는다. 당사자 스스로 고민하고 정리하는게 먼저다.


감사를 받게 되면, 하루종일 감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가정에 관한 생각에 다시 가정이 붙으니, 생각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며칠을 고민해도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글로 써보라. 많이 생각한다고 묘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자칫 생각이 치우치거나 감정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몸을 움직여라. 몸을 움직이고, 몸에 좋은 걸 먹고, 책상에 앉아서 글로 써보라. 무엇이 문제이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써보라. 감사에 경험이 많은 사람이 있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감사를 진실게임이나 자존심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경기가 시작되었으며, 경기의 결과만 있는 것이다. 구경꾼들은 원래 꼬이는 것이니 내버려 두어라.


구경꾼들은 조심하시라. 2차 가해자로 감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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