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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를 당했다면, 일단 복지부동

(감사에서 살아남기)(14)

by 고길동

<신고를 당했다면, 일단 복지부동>



나쁘고 악한 사람이 신고당하고, 감사받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평생 조사받은 적 한번 없는 사람이다. 누구나 신고당할 수 있다. 조직내에서 신고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 신고자도 어느 순간 결단한다. 민원인도 답답함을 참다가 갑자기 신고하기도 한다. 그때까지는 내색하지 않으니, 신고당하는 사람은 알아채기 어렵다.



신고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아무것도 안 해야 한다. 모든 걸 정지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피신고자인 당신을 보는 눈이 많을 수 있다. 여러 명이 연명으로 신고했을 수도 있고, 제3자가 신고했을 수도 있고, 믿는 사람이라고 속마음을 말했는데 신고자에 전달할 수도 있다. 모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니 감정적으로 격해진 상태에서 섣불리 움직이다 결정적 증거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복지부동해야 한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은 군사용어다. 배를 땅에 대로 움직이지 않는 전술행동이다. 야간 이동 시 적 조명탄이 터지거나 기습 사격이 있으면 취하는 전술행동이다. 팔다리는 오므려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들고, 총 같은 반사될 만한 부분은 배 아래쪽으로 가린 후 배를 바닥에 붙인다. 왜 도망가거나 반격하지 않고 그냥 엎드리는가. 적이 왜 조명탄을 터뜨렸는지, 왜 사격을 하는지, 어디에서 공격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적의 의도와 행동을 알지 못하니 일단 엎드려 적의 의도를 살펴보는 행위다.



복지부동은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복지부동엔 나른함이 들어있지 않다. 고민끝에 결단한 전술행동이다. '전술'의 영어표현은 'Art'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신고를 당했다면 섣불리 움직여선 안 된다. 일단 멈추고 민첩하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감사에서 증거가 없으면 없는 사실이다. 신고한 사람은 이런저런 증거를 모아 놓았을 것이다. 신고한 이상 더 모으려고 할 것이다. 모아 놓은 증거를 받은 감사관은 사건처리를 위해 더 많은 증거를 모을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 피신고자인 당신을 부를 것이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할지 대비해야 한다.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부터라도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오해라며 피해자와 얘기하고 싶고, 자신의 정당성과 억울함을 주변에 호소하고 싶을 것이다. 사건은 처리될 뿐이다. 정의론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사건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의 눈과 귀가 당신을 살펴보게 된다. 단어와 문장사용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단톡방이나 게시판은 화면으로 남으니 더욱더 신중해야 한다.



어떤 상황인지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 분하고 억울한 감정 때문에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된다면 이렇게 되겠지’라는 가정적 생각에 빠지면 가정에 가정이 더해져 상상의 범위가 끝없이 펼쳐지게 된다. 네이버, 구글, 유튜브에 검색어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는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는다.



글로 써보라. 자신의 상황을 글로 써보라. 글로 써야 생각이 정리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누가 신고했는지, 왜 신고했을지, 당시 신고자는 어떻게 인식했을지, 신고내용이 법 위반인지, 증거는 뭐가 있는지 써보라. 사실을 모두 인정하는 게 맞을지, 신고인을 찾아가 사과를 하는 게 맞는지, 사과를 했을 때 받아들여질지, 사과가 오히려 비위의 자백이 되지는 않을지 생각해보고 글로 써보라. 감사는 감사로 끝날지, 징계로 이어지진 않을지 써보라. 어쨌거나 쓰면서 업데이트 해가라.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그들의 도움을 받아라. 전직 감사실 직원이어도 좋고, 변호사여도 좋다. 전문가의 조언은 고민하지 않아도 될 부분과 대응해야 할 부분을 구분해 준다. 전문가들은 국면별로 대응할 부분을 알고 있다. 이것만 정리되어도 머릿속에 꽉찬 사건 생각이 어느정도 정리된다. 합의나 사과 과정에서 2차 피해 문제를 피할 수도 있다.



공감을 받기에는 주변동료들이 좋겠으나, 그들이 공감을 얻으려는 당신의 말과 행동을 소문내는 한 명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신을 위한다며 하는 말들이 소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신을 피폐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감사가 시작되면 자신을 스스로가 잘 관리해줘야 한다. 감사만으로도 두 달 이상이 걸리고, 징계 절차까지 생각한다면 반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사건처리기간 내내 사건에 집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밥 먹으며, 일하며, 쉬면서, 자면서 사건을 생각하는 건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일 뿐 사건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메모해가며 생각과 행동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뜬금없지만, 몸을 움직이는 걸 추천한다. 산책이나 달리기 같은 거 말이다.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겠다.



원치는 않았지만, 사건의 주인공은 신고당한 당신이며, 사건이 끝날때까지 주인공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주인공의 몸과 정신은 당신이 관리해야 한다. 사건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은 민첩하고 전술적으로 행동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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