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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과 없이 퇴직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일인가.

(감사에서 살아남기)(13)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132984644


<대과 없이 퇴직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일인가.>


감사는 여러방식으로 시작된다. 종합감사나 재무감사처럼 일정한 주기에 맞추어 순환하기도 하고, 특정감사처럼 지시나 신고를 계기로 감사가 시작되기도 한다. 신고는 평온했던 조직에 감사라는 불을 붙이는 발화지점과 같은 것이다. 자신은 타서 사그러지더라도 상대방을 태워버리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신고하기 어렵다. 신고자의 신원을 아무리 보호한다고 한들 감사가 진행되면 누가 신고했는지 조직원들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신고를 하려면 무언가를 감내해야 한다. 직장내 신고의 경우 신고의 대상이 대부분 상급자인데, 조직의 의사결정은 상급자들이 한다. 그 상급자들 중의 한 명을 신고한다는 것은 결과를 알 수 없는 룰렛을 돌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상급자가 징계나 경고를 받는다고 해도 그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문책받은 상급자와 같은 직장에 다녀야 한다. 그만 둔다고 해도 피신고자의 동료와 친한 사람들과 여전히 같이 회사에 다녀야 한다. 아무일이 없어도 상사를 신고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견뎌야한다. 어떤 이들은 감사실에 신고할 필요까지 있었느냐며 양비론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부패방지법이나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신고를 이유로 어떠한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법률이 선입견이나 인식을 통제할 수는 없다.


즉흥적인 신고보다는 차분히 준비한 신고가 많다. 직장생활을 하면 신고한 사람의 불이익을 저절로 알게 된다. 그러니 신고는 굳은 마음을 먹은 후에 일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신고자는 어느 정도 참다가, 신고할지말지 고민하다가, 신고하기로 마음먹는다. 신고하기로 마음 먹었으므로 신고를 준비한다. 비위와 부조리를 적어보고, 증빙자료를 모은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녹음도 한다. 그리고 화를 돋구거나 필요한 말만 유도해 내어 녹음한다. 믿을 만한 사람과 이야기해본다. 신고서를 써보고, 이러저리 읽어본다. 그런 다음 드디어 감사실에 신고하게 된다.


감사와 관련해서는 직장내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고하는 것이 전형적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양한 신고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직장 밖의 사람이 신고하기도 하고, 부서원 등 여러명이 연명하여 신고하기도 한다. 이름을 알리지 않은 익명의 신고도 있으며, 피해자가 아닌 제3자가 신고하기도 한다. 노동조합이나 NGO 같은 단체나 법인이 피해자를 위해 신고하기도 한다. 변호사가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이 정도면 괜찮겠지’, ‘제와 나 사이에 이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는 사이야’, ‘내가 제한테 해준게 얼만데’ 등 피해자와의 신뢰관계에만 기대해선 의외의 신고를 당할 수 있다.


직장 밖에서 신고하는 경우는 조직원간의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다. 조직의 비위에 대해 신고하면 조직이 대응하고, 개인적 비위를 신고하면 개인이 대응한다. 계약결렬, 계약해지, 허가 거부처분 등에 불만을 가지고 신고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계약, 연장, 허가 등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계약관계가 파탄되었다면 직장 밖의 사람들은 신고에 거리낄 것이 없고, 보통은 처벌의지도 강력하다. 업체와의 신뢰관계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으며, 제3자에게 영원한 비밀로 유지되지 않는다.


부서원들이나 조직원들 여러명이 서명하여 함께 신고하는 연명신고가 있다. 연명신고는 신임 부서장이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어느 정도 지나면 신임 부서장도 새로운 조직의 관례에 적응하고, 부서원들도 새로운 부서장의 업무 스타일에 적응하고 타협하기 때문이다.


연명하여 신고하였다는 것은 연명한 사람들의 의사가 모였고, 피신고자는 그 대척점에 있다는 것이다. 연명자들은 모여 논의를 했고, 피신고자의 비위와 규정위반 사실을 모았다는 얘기다. 비위를 모았으니 피신고자의 악행은 더 커보이기 마련이고, 연명하였으니 그들은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진술이 서로의 진술을 보강하여 진술의 신빙성을 극도로 높이게 될 것이다. 연명의 대오는 단단해 깨뜨리기도 어렵다. 연명의 이름으로 어깨를 걸었으므로 그 대오에서 빠지기는 어렵다. 그만큼 피해자와 합의도 어렵다.


연명신고는 자칫 단체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 연명하여 신고를 하게 되는 걸까. 새로 부임한 부서장이 기존의 관례를 바꾸려고 하는 경우이거나 기존 부서장과 너무나 다른 업무형태를 보이는 경우다. 새로 부임한 부서장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부조리를 개선하려는 경우다. 조직원들은 새로운 업무지침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들이 조직의 주인이고, 기관장이나 부서장은 왔다 떠나는 사람인데, 업무스타일을 모두 바꾸려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각자 기관장이나 부서장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하나 둘 모이게 된다.


기관장이나 부서장은 당연히 업무지침을 내릴 수 있다. 편법이나 부조리 관행을 없애라고 지시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원들도 기관장이나 부서장 '너는 깨끗하냐'며 이런저런 위반사실을 모을 수 있다. 그러니 조직의 편법과 관례를 없애고자 마음먹었다면 스스로부터 흠이 없도록 신경써야 한다.


정상적인 건의를 하면 될 것을 연명신고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기관장은 자신의 권한 범위내에서 해결하려 할 것이다. 피신고자에게는 ‘다시 그러지 마라’고 구두경고하고, 신고자들에게는 ‘내가 엄중히 경고했다’고 말하면서,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연명신고자들이 기관장에게 건의하지 않는 것이다.


익명의 신고는 '익명 민원'이므로 접수하지 않을 수 있으나 사안이 심각한 경우 감사실에서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익명이 보호되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감사관은 누설하면 처벌받기 때문에 당연히 신고자를 누설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알게 되는 걸까. 신고가 있다는 얘기는 피신고자가 있다는 말이다. 피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사람을 추려보면 몇 명 없다. 그 사람들 중에 신고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 적어진다. 알리바이나 후보자들의 성향 등을 고려하면 대상자는 더 추려진다. 익명을 아무리 보호하려한 들 사람들이 금새 짐작하게 된다.


피신고자가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이익을 준 사실은 없지만, 피신고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거나, 피신고자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거나, 가끔씩 정의감에 불타는 경우 제3자가 신고를 한다. 제3자가 신고하는 경우에 긴장해야 한다. 피해자는 사적인 심부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고, 인격모독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다. 몸매에 대한 언급이 불쾌하긴 했지만 신고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신고해서 진술하고, 감사관을 만나고, 처벌받은 사람과 어색하게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제3자가 공직기강문란, 성실의무위반, 성인지감수성 부족 등을 이유로 신고할 수 있다.


제3자 신고는 예상하기 어렵다. 피신고자와 모든 규정을 준수하면서 제3자를 조심히 대했을 것이다. 피신고자는 자신과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격의 없이 지냈을 것이다. 정작 피해자는 뒷담화나 투덜거림 정도로 말한 것인데 이것을 제3자가 신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제3자가 신고하면 피해자 본인은 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조사를 받게 된다. 그때 자신은 괜찮았고, 아무렇지 않았다고 진술하기도 또한 어렵다. 그러니 상대방과의 신뢰관계만을 믿고 행동해선 안 된다. 많은 눈이 보고, 귀가 듣고 있다.


단체가 신고하기도 한다. 피해자들이 투덜거리고 다니는 내용이 무용담처럼 번지게 된다. 무용담에 살이 붙어 더 용감한 무용담이 되고, 어느 순간 전설같은 이야기가 된다. 이것을 알게된 NGO나 노동조합은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대신하여 신고하겠다고 말한다. 그때 ‘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설령 말했다 한들, NGO나 노동조합이 단체명의로 직접 신고할 수도 있다.


단체는 신고 자체로 단체의 존재의의를 보일 수 있다. 무엇이 정의인가하는 ‘정의론’에 힘이 실린다. 그 절차를 겪어내야 할 피해자들의 부담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합의’, ‘타협’, ‘절차의 종결’ 같은 것은 선택지에 들어 있지 않다. 피해자들이 ‘그 정도까지는 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여도 단체의 주장이 쉽사리 약화되지는 않는다.


피신고자는 신고에 대한 방어를 계속하다 신고한 사람의 비위를 언급하거나 신고자를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감사를 받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얼마나 처벌받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처벌받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감사가 개시되면 감사범위를 확장하지 않는 한 감사의 대상은 피신고자로 한정된다. 그러니 신고자의 비위를 공격하겠다는 판단은 여러 사정을 전략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판단해야 할 것이다.


대과 없이 퇴직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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