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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보다 더 많은 합의금을 요구한다면

(감사에서 살아남기)(18)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039667100



<피해보다 더 많은 합의금을 요구한다면>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자가 있다. 피해자는 피해의 회복을 주장하고, 가해자는 상대의 손해를 계산한다. 피해보다 많은 돈을 요구하면 터무니없다고 비난한다.



피해 회복의 요구는 사과일 수도 있고, 인사조치일 수도 있고, 금전의 지급일 수도 있다. 사건의 처리에서 합의의 중요성을 서로 잘 알면서도, 합의의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종종 감정이 격해지고,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다.



일단, ‘피해’의 규모에 대해 피해자와 가해자는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피해자는 자신이 ‘느끼는’ 피해에 추가하여 합의금을 요구하고, 가해자는 ‘피해’를 객관적으로 산정하여 합의금을 제시하려 한다.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요구는 터무니없을 뿐이다.



그런데, 감사사건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민사재판이 아니다. 감사관이 원하는 문서는 손해를 회복시켰다는 확인서나 계좌이체 내역이 아니다. 더이상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서, 즉 합의서를 원한다. 합의서만이 감사기록에 증거로 묶일 수 있다.



협상은 어느 지점에서 타결되는가. 어떠한 협상이건 일방이 위험을 감내할 수 없는 지점에서 타결된다. 유능한 협상가는 협상 결렬 시 상대방이 부담하는 위험과 우리측이 부담하는 위험을 계산하고 협상테이블에 앉는다. 상대측의 배포와 결정권자의 성격도 고려에 넣을 것이다. 합의금을 협상할 때는 결렬 시 내가 입은 손해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 결렬 시 피해자가 입을 손해는 이후에 계산해야 한다. 결렬 위험의 대부분은 피해자는 감내할 수 있고, 가해자는 감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결렬 위험은 ‘금전’에 한정되지 않는다. 승진, 인사조치, 징계, 절차적 고통, 수사개시 가능성, 재판결과에 따른 불이익 등 불이익의 총량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비록 합의금이 피해자가 입은 손해보다 훨씬 크다 해도 내가 입을 불이익의 총량보다 낮다면 합의하는 게 합리적이다. 협상의 기술을 발휘해야 할 대목이지만, 합의내용, 감정적 대응자제, 접촉 간격, 냉각기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협상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가해자는 결렬 시 불이익을 차분히 종이에 적어보면서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피해자도 협상결렬의 위험이 있다. 합의가 결렬되면 가해자는 공탁할 것이다. 민사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 형사공탁금은 민사소송 손해배상금에서 차감될 것이다. 민사소송은 실손배상의 원칙상 손해 이상은 배상받을 수 없다.



합의결렬 시 잃을 것이 누가 많은 지는 서로 금방 알아챈다. 감사나 형사절차가 개시되면 가해자는 결국 합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징계처분, 형사처분과 여기에 따르는 부수효과(정근수당, 성과상여금, 호봉승급, 징계부가금, 감봉액 등)만으로도 수천만 원에 이르고, 심한 경우 연금이 박탈되기도 한다. 승진과 보직에도 알게 모르게 불이익이 수반될 것이다. 공직자가 가해자가 되면 피해자는 합의금을 높게 부르게 되는 이유다. 가해자는 최초 합의금을 제시할 때 이후 어느 정도 올라갈 것을 예상하고 협상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사과는 진지하게 하되, 감정이 격해져 있다면 제3자나 변호사를 통한 협상도 고려해볼 수 있겠다.



어떻든, 합의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합의를 하면 감사나 형사절차가 개시되지 않을 수 있다. 설령 개시되어도 피해자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얘기할 것이고, 가해자는 깊이 반성하는 태도로 조사를 받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당연히 문책수위도 경하게 나올 것이다.



입증의 문제도 가해자에게 월등히 유리해진다. 감사에서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기록에 묶일 수 있는 것만이 감사증거이고, 강제수사권이 없는 감사의 특성상 피해자의 진술 이외에 별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근태, 갑질, 모욕, 명예훼손, 금전부조리 등에 대해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고, 가해자에게 유리한 진술을 확보한다면 감사는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다.



합의가 진행중인데 감사가 개시된다면 감사관에게 합의가 진행중이니 조사를 조금만 연기해달라고 해야 한다. 피해자가 전부 진술한 이후에 합의하면 합의가 무슨 소용인가. 감사관도 피해자와 합의진행중이라면 어느정도 기한을 줄 것이다. 피해자와 적극적으로 합의해서 감사가 원만히 끝나도록 해야하지 않겠는가.



감사사건에서 피해보다 더 많은 합의금을 요구할 수 있다. 먼저 이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합의는 피해자의 불이익이 아닌, 결렬 시 발생하는 나의 불이익을 생각하는 고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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