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서 살아남기)(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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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을 받았는데 왜 서운할까>
20년 넘게 감사·법무관련 일을 하다보니 많은 상담을 했다.
대부분의 상담은 갈등은 깊어져 수습할 수 없거나, 한 차례 조사를 마친 후였다. 피조사자는 자존심을 지켜내면서 사건을 해결해보려 했을 것이다. 피해자를 만나고, 상관에게 이해를 구했으리라. 사건은 꼬여 피해자와 자존심 대결로 치닫게 되고, 어느 날 감사개시통보를 받았을 것이다. 감사관에게 불리한 것 마저 진술해 버리고 나서야 현실을 인식하고 나에게 조언을 구했을 것이다. 깊어진 갈등과 최초 진술이 끝난 상태이니 사건수습은 언제나 옹색했고, 옹색한 만큼 아쉬웠었다.
피조사자를 상담해보면, 분기탱천해 있거나 위축되어 있었는데 어느 경우이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다. 거기엔 조직이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피해의식이 깔려 있었다. 자신이 잃을 수 있는 것과 피해갈 수 있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답답함과 억울함만이 가득했다.
사건의 배경, 쟁점, 객관적 상황을 알지 못하니 조언자에게 하는 상담이란 하소연에 가까웠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더해, 자신에게 들려온 풍문까지 모든 것을 쏟아냈다. 음모론이 깔려 있는 가정적 질문도 여러번 계속 되었다.
상담이 끝나면 언제나 서운해했다.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해도,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일 아니라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하는 것 아니냐며 조금 더 고민하면 대책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하며 서운해 했다. 나름대로 대안을 찾아서 얘기하면, 피조사자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더 참신하거나 세련된 대안이 없는 것에 서운해 했다. 끝까지 함께 대응해주지 않아도 섭섭해했고, 피조사자의 잘못도 있다거나 불리한 결과를 예측해도 역시 섭섭해했다.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이 피조사자를 위해 상담했을 뿐인데도,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에 만나면 뭔가 서먹했다. 피조사자의 잘못도 아니고, 나의 잘못도 아니다. 나도 그 상황에 처하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이럴 땐 내가 가진 직업을 숨기고 싶기도 했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라도 감사를 받을 수 있다. 조사받으며 고립되고 혼자 판단하는 게 맞는 것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고, 애초에 혼자 헤쳐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지푸라기라도 잡으려하고, 도움이 안되는 위로라도 받고 싶은 것이다. 용기를 내어 조언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해야하지 않겠는가. 20년 넘게 조언을 하면서, 피조사자가 이렇게 질문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