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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으려면 변호사가 필요합니까?

(감사에서 살아남기)(22)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068164651


<살아남으려면 변호사가 필요합니까?>


무엇인가 잘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하는 사람처럼 하면 된다. 잘하는 사람을 따라해야 한다. 골프를 잘하려면 선수자세를 따라해야 한다. 성적을 올리려면 공부 잘하는 친구처럼 공부해야 한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난 상황이 달라'하며 자신만의 비법으로 덤빌일이 아니다.



세상 잘 나가는 변호사도 사건이 시작되면 변호사를 선임한다. 구속이 되지 않아도, 시간이 여유가 있어도 변호사를 선임한다. 대학생 때는 이게 이해가 안 되는데, 지금은 왜 그런지 안다. 인간은 겨우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지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못 보는 사람도 자신이다. 주관에 치우지고, 감정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사건당사자가 되면 희망 섞인 관측과 원망스런 좌절을 오가며 금새 피폐해진다. 주변엔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만 어슬렁거릴뿐, 피조사가의 곁에서 같은 편임을 선언하는 사람은 없다. 생각이 복잡해지니 정상적 판단이 어렵다. ‘사건에 휘말리면 지능이 30%로 떨어진다’는 말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형사사건은 피의자의 이름과 함께 개시되지만, 감사사건은 처분 대상자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죄형법정주의의 형사사건은 위반사항이 구체적으로 법률에 쓰여있지만, 감사사건은 '성실의무위반', '품위유지의무위반' 처럼 뿌옇게 쓰여 있다. 형사사건은 피의자에 대한 형사처분으로 끝나지만, 감사사건은 제도개선, 통보, 시정조치, 기관주의, 기관경고 등 처분 대상자가 없이 종결되는 경우가 더 많다. 개인에 대한 처분이 있더라도 징계처분 보다는 신분상 주의, 경고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희망섞인 관측을 하다보면, ‘나는 감사대상이 아니야’, ‘시스템의 문제인데 신분상 조치까지 하겠어?’, ‘언제적 일인데, 이걸 문제삼겠어?’하며 대범한 척, 가벼운 일인척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감사관들이 점점 자신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하면 어-, 어- 하다 자신이 주요 감사대상임을 알아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탈출해 안도한다. 자신은 누구도 곁에 없음에 당황하게 된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 ‘의뢰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어려운 일이다. 의뢰인이 원하는 것이 의뢰인에게 불리한 경우도 있고, 의뢰인에게 유리한 것인데도 의뢰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변호사는 이 둘 사이를 오가며 변호한다.



‘의뢰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변호사가 있다. 속 시원하게 적절한 감정을 섞어가며 변호한다. 의뢰인의 요구사항을 듣고 법논리와 판례를 섞어가며 의견서를 작성하고, 감사관이나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자신있게 말한다. 의뢰인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게 그것이었다며 정말 유능한 변호사님이라고 인사한다. 징계위원회가 끝나면 격정적으로 변호해주셔서 속이 다 시원하다며, 승패는 상관없다며 감사 인사를 한다. 중징계가 나오면 신고인, 감사관, 간사, 위원을 욕한다. 자신은 끝까지 다투겠다고 선언한다. 인사소청, 행정소송까지 지면 자신이 평생을 바친 부처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분해한다.



‘의뢰인을 위한 것’을 하는 변호사가 있다. 의뢰인의 주장이 감사나 징계에 좋지 않다며 의뢰인을 설득하는 변호사들이다.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았지만, 감사관과 의뢰인 사이를 오가며 모두를 설득하는 변호사들이다. 의뢰인은 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하느냐고 불평한다. 감사관을 위한 변호사가 아닌지 헷갈린다. 변호사는 감사나 징계는 자존심 싸움터가 아니며 처벌받지 않는 게 훨신 중요하다고 설득하지만, 의뢰인은 '그런가?'하면서도 찜찜하고 억울하다. 냉정을 유지하는 변호사는 의견서도 담담하고, 흥분하며 말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열정적 모습을 보기 어렵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속 시원히 다 얘기했는데도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고, 의뢰인을 위해 열심히 타협하고 변호했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다. 현실의 변호사는 ‘의뢰인의 원하는 것’과 ‘의뢰인을 위한 것’의 극단에 있기보다는 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둘 사이 어딘가의 위치마다 능력의 강약이 다른 변호사들이 자신을 팔고 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선택을 받기위해 무엇을 강조할까. 의뢰인은 어떤 점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할까. 변호사도 의뢰인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 같다.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전문가인데, 없는 것보다 백배는 낫지'. 이런 거 아닐까. 감사에서 변호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변호사가 있으면, 다툴만한 것인지 아닌지 정리가 된다. 양보하는 건지 아닌지, 할 수 없는 건지 어려운 건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사건구조인지 판단해 볼 수 있다. 사실상 결론이 정해진 사건이 있다. 이런 사건은 무사히 돌아올 수 없다. 맞을 것을 맞아야 하는 사건이다. 이럴 땐, 모두 인정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한다. 시스템에 문제이지만 자신은 기관장(부서장, 담당)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다만, 양정의 선처만을 구하는 방향으로 변호의 방향을 잡는 것이다. 책임지는 당당한 자세로 문책을 받는 경우, 조직에서는 어느정도 희생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앞으로 계속될 조직생활에 어느정도 반영이 될 것이다. 다툴만한 사건이 아님에도 감사 대상자들은 희망섞인 관측으로 자신은 처분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쉽다. 전임자를 물고 늘어지고, 상사가 시켰다고 하고, 피해자의 일부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다투기도 한다. 내용은 조금 받아들여졌겠지만, 대세에는 영향이 없는 주장일 수도 있다. 주변 모두와 척을 지며 감사가 마무리된다. 처분은 처분대로 받고, 조직생활은 더욱 힘들어지게 된다. 스스로 현명하거나, 전문적으로 조언을 받으면 사건의 시작단계부터 적정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변호사가 있으면, 행정심판이나 소송에 대비하며 감사에 대응할 수 있다. 감사나 징계절차에 참여할 때도 이후 있을지도 모를 행정심판(인사소청, 징계항고 등)이나 소송에 대비하며 진행한다. 의뢰인의 진술을 정제하고, 조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관에게 적당한 긴장감을 줄 수 있다. 감사관의 과한 질문도 줄고, 조서확인 과정에서 답변도 다듬어질 것이다. 증거가 있는 비위사실과 증거가 없는 사실을 구분해 낸다. 제출된 증거를 탄핵하는 증거를 모으고, 유리한 자료를 제출한다.



변호사가 있으면 역할을 분담할 수 있다. 감사과정, 징계위원회, 징계항고, 인사소청에서 의뢰인은 반성하면서도 다투어야하는 모순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의뢰인은 반성하고, 변호사는 다투며 역할을 분담하면 모순을 돌파해 나갈 수 있다. 상설 징계위원회이거나 비상설 징계위원회이거나 모든 징계위원이 징계기록을 전부 읽고 심의하지는 못한다. 보통은 주심위원이나 징계간사가 요약자료를 작성하여 심의를 진행하게 된다. 여기에는 작성자의 방향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의뢰인에게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비위사실로 징계요구되었으니 대게는 불리한 방향이다.



보통 각종 위원회는 당일 종료된다. 단판승부다. 외부위원이 있다면 외부위원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도 있다. 한 명만 반대해도 방향이 바꾸게 된다. 외부위원 중에 변호사가 많으니 법조인의 변론이 효과적일 때도 있다. 위원들이 그때그때 선임되는 경우에는 당일의 분위기가 아주 중요하다. 양정의 수위는 위원회의 분위기에 순식간에 결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징계혐의자에게 유리한 것을 물어봐주지 않는면, 혐의자 스스로 유리한 사실을 주장하기 어렵다. 징계위원 중 징계혐의자에게 수긍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여도 우호적 질문을 계기가 필요한데 여의치 않을 때도 있다. 변호사가 자료를 제출하면 위원들은 의견서를 본다. 변호사가 변호를 하면 위원들은 듣는다. 변호사의 의견서나 질문이 우호적 질문의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변호사가 위원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증거가 있음을 환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변호사도 의견서를 기초로 징계위원장의 허락을 받아 징계혐의자인 의뢰인에게 질문할 수 있다. 의뢰인은 신고 경위, 시스템적인 문제점, 피해 회복, 반성의 깊이와 정도에 대해 진술할 기회를 다시 한 번 갖게 된다. 뉘우침이 빛이 물씬 뭍어날 수 있는 변호사의 질문이 필요한 순간이겠다.



변호사가 있으면 세세한 대응이 가능하다. 변호사가 없다고 하더라도 의뢰인이 다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처분대상자이다보니 아무래도 위축되어 감사관이나 징계간사 접촉을 부담스러워한다. 변호사를 통해 조사일정과 조사장소 조정, 비위금액의 반납, 피해자와 합의시도, 공탁, 집행정지 등을 할 수 있다.



물론 위의 모든 것이 변호사가 없어도 가능하다. 변호사를 선임할 논리필연적 이유는 전혀 없다. 변호사를 선임하였을 때 결과가 좋았다는 귀납적 근거도 데이터도 없다.



기원전 7세기 시인인 아르킬로코스는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고 말했다 한다. 나는 한 가지를 안다. 세상 잘 나가는 변호사들도 사건에 휘말리면 변호사를 선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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