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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진실되게 묻자

(감사에서 살아남기)(23)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084695346



<구체적으로 진실되게 물어보자.>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감사에서 희망섞인 관측이 최대의 적이다. 감사는 피해자가 받는 게 아니라,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받는다. 그러니 피해자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며 감사관은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해보아야 한다.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피조사자다. 물론 다 알지 못한다고 하겠지만, 사건의 등장인물 중에 가장 잘 아는 사람 중에 하나다. 그러니 사건의 초기에 희망섞인 관측으로 안위하지 말고 초기에 조언을 구해야 한다.


조언을 구할 때 진실하게 해야 한다.


거짓을 말한다는 게 아니다. 선별해서 말한다는 얘기다. 지인에게 상담하는 것이니 불리하거나 부조리한 내용 전부를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인데, 잘못한 것, 불리한 것, 사건의 원인제공 같은 건 이야기하지 않는다. 조언자가 지인이니 억울함과 정당함을 보이고 싶어한다. 격려와 지지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 ‘어떤 사실’은 스스로 사건과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모를 내용인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한다.


사건은 통째로 한 건이므로, 통째로 전략을 수립하고 대응해나가는 것이다. 진술의 일관성 하나만 무너져도 피조사자의 신빙성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


감사관은 이 점을 노리고 있다. 진술 전체가 허위라는 증거를 찾아내기는 어렵겠지만, 진술 일부의 허점을 찾아내어 전체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고 할 것이다. 피조사자의 진술뿐만 아니라, 신고인의 진술, 업무담당자의 진술, 증거, 사진, 공문을 확인하면서 ‘뭐 쓸만한 증거가 없나’ 뒤적거릴 것이다.


피조사자는 감사관처럼 여러 경로로 사실에 접근할 수 없다. 한정된 자료와 경험에 의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제한된 사실과 모자란 증거를 가지고 조언 받는 것이다.


조언자는 피조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제한된 사실과 모자란 증거마저 피조사자가 선택하여 제공한다면 조언자는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없다. 피조사자의 축소진술은 조언자의 고민과 시간을 허망하게 만든다. 나중에 ‘왜 그 사실을 말씀하지 않으셨냐’고 물으면, ‘그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중요한 건지 몰랐다’고 둘러댄다. 모조리 얘기하라. 당신은 무엇인 상관이 있는건지, 무엇이 중요한 건지를 조언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조언자는 사건과 직접 상관없는 말 속에서 사건의 배경과 상대방의 감정을 잡아 낼 수 있고, 증거의 위치나 목격자의 진술의 단초를 찾아내기도 한다.


그러니 조언을 받으려면 모두 말하고, 모두 말하지 않으려면 조언을 받지 말자. 그건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다.


조언받을 사항을 글로 써보자.


피조사자는 모든 것이 궁금하다. 모든 것이 궁금하다는 것은 무엇이 궁금한 것인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려고 한다. 사건당사자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좋았던 시기, 어려웠던 시기, 갈등관계까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물론 선별적으로 추려진 사실들이다.


사건의 당사자가 되고보면 ‘다 얘기한다’는 것 자체도 어렵다. 어디까지가 사건의 전부인지 알기 어렵고, 말할 때마다 생각의 범위가 달라지며, 혼란스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궁금한 것도 매번 달라진다. 그간의 친분으로 30분 넘게 이런저런 답변을 해주면, 며칠 있다가 전화해 이것저것 물어본다. 사건의 국면이 바뀔 때마다 전화한다. ‘앞으로 이렇게 된다면 어떻게 되나요’ 같은 가정적 판단이 많다. 정작 자신의 판단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언을 구하려면 질문이 있어야 한다. 머릿속의 갑갑한 상황에서 질문을 찾아내 물어야 한다. 질문하려면 먼저 머릿속부터 정리해야 한다. 내가 추천하는 방식은 써보는 것이다.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써보자. 컴퓨터 앞에 앉아 써보자. 문단별로 제목도 달아보자. 쓰다보면 사실도 정리되고, 질문할 것도 찾아진다. 상황과 질문이 종이로 정리되면 관련 자료도 같이 준비해야 한다.


조언자를 찾아가자.


질문과 관련 자료가 준비되면 조언자를 찾아가자. 간절한 사람은 피조사가 아니던가. 그러니 전화로 하지 말자. 눈빛을 보며 이야기하자. 조언자가 찾아오는 걸 부담스러워하면 전화로 하면 된다. 피조사자의 진심이 전해졌으면 그걸로 된 거다.


조언자는 바쁘다. 피조사자는 하루종일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있겠지만, 조언자의 1시간은 1시간대로 소중한 시간이다. 조언자가 당신 일처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돈을 주고 선임하는 변호사도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척 보면 사건의 결론을 알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그렇게 간단하면 감사는 왜 몇 달씩 걸리며, 재판은 왜 몇 년씩 하겠는가. 조언하는 사람에게 사건의 해결의 비책을 기대하진 말자. 말 그대로 조언을 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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