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서 살아남기)(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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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공직기강 점검이 온다. 공직기강은 기습하듯 오지 않는다. 때가 되면 미리 공문이 온다. 도착한 공문은 본 듯 만 듯 공람함에서 잊혀진다. 공직기강의 ‘때’는 설날, 여름휴가(7월말), 추석, 연말이다. 선거가 임박하면 한 번 더 나온다. 불시 점검이 있기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거의 없다. 일 년에 대략 5번의 이벤트가 있는 것이고, 그때마다 공직기강 점검이 있다.
감사관은 모든 기관에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산하기관 중 몇 개 기관을 선별한다. 선별이라는 게 무작위 추첨은 아니다. 좋은 것도 아닌데, 감사실이 한 개 기관만 찍어 점검할 수는 없다. 기관장의 입장도 있고, 감사관도 조직생활 해야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감사관은 기관마다 비슷하게 점검 횟수를 조정한다.
느낌상 공직기강점검이 우리 기관만 자주 돌아온다. 30개 산하기관이라고 해보자. 일 년에 이벤트가 5번인데 한 번의 이벤트에 3개 기관 점검한다면, 일 년에 대략 15개 기관을 점검하게 된다. 간단한 산수로 최소 2년에 한 번씩은 공직기강 점검을 받게 되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괜한 피해의식을 갖진 말자. 점검 횟수는 공평하니, 공문오면 점검 준비 잘하고, 자신이 당직일 때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게 낫다.
공무원 공직기강의 주무부처는 국무조정실이다. 공직기강 점검결과는 국무조정실에 제출해야 한다. 점검 나가는 감사관들은 국무조정실에 제출할 자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3개 기관을 점검하기 위해 감사관 9명이 투입되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보고하기는 어렵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당연히 문제가 없다고 쓸 것이고, 그렇게 써야한다. 그렇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기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공직자들은 알고 있다. 뭐라도 써가야 하는 게 감사관의 숙명이다.
1박2일로 점검하는 것이니 조서나, 사실조사가 필요한 것을 점검하긴 어렵다. 금품수수 현장 같은 걸 적발할 수도 있겠으나, 별도의 제보가 없는 이상 감사관들이 현장을 급습할 확률은 영(零)에 가깝다. 서랍, 캐비넷을 뒤지고, 업무의 정당성까지 확인할 수는 없다. 어느 기관만 끌로 팔 수는 없다. 즉시 확인할 수 있는 통상적인 것 위주로 점검한다. 개인정보방치, 잠금장치, 소방시설, 비상연락망, 비상응소, 비문함 관리 같은 것이다. 휴가명단, 출장명단, 재택 매뉴얼 준수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공직기강 점검에 1등할 필요는 없다. 시험에서 상위권 점수를 받는 방법은 기출문제집과 예상문제집을 푸는 것이다. 공직기강점검의 기출문제와 예상문제는 명확하다. 개인정보방치, 잠금장치, 소방시설, 비상연락망, 비상응소다. 이것만 해도 평균이상의 득점이다. 최소한 경고나 주의처분은 받지 않을 것이다. 수범사례를 써가면 최상이지만, 현지주의, 개선권고, 통보만 해도 선방이다. 기관의 성적보다 중요한 건 내가 문책받지 않는 것이다.
다 적을 수도, 빈손으로 갈 수 없는 노릇이었을 감사관들은 쓸 무언가를 들고 떠났다. 혜성이 주기가 되면 다시 돌아오듯, 때가 되면 잊지 않고 돌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