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by 고길동
도로교통법 제44조 제1항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여서는 아니 된다'

음주운전은 아무리 금지하고 엄벌해도 늘상 있고, 적발건수도 많다. 그동안 법령도 세분화되었고, 판례도 많이 쌓였다. 쌓인 판례만큼이나 쟁점은 많다. 언뜻 생각나는대로 써본다.


무엇이 운전인가

어디까지가 도로인가

자동차는 뭔가

사람마다 취하는 정도가 다르지 않은가

사람마다 술에서 깨는 정도도 다르지 않은가

음주운전 후 나중에 혈중알콜농도 측정하면 운전할 때 혈중알콜농도는 어떻게 역산하는가

혈중알콜농도 측정기 오차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호흡으로 측정하는 것과 체혈측정의 차이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혈중알콜농도 측정이 없었을 때 음주수치는 어떻게 판단하나

음주운전단속의 임의수사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경찰이 아닌 사람이 음주측정하면 증거능력이 있는가

정신을 잃은 사람에 대한 채혈은 증거능력이 있는가. 등등등


근데 이런건 재미가 없는 쟁점이니까 전문가에게 맡겨두고 재밌는 사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채혈까지 마쳐 혈중알콜농도 수치가 명확히 나온 음주운전 피고인이 있었다. 음주운전에 적발되면 모두 이번 한 번뿐이었다하고, 1킬로미터 이상 음주운전했다는 사람이 찾기 어렵다. 다들 딱하고, 다들 간절하다. 이 피고인도 그랬다. 그런데 처음보는 억울함과 딱함을 당당히 주장했다. 법정에 들어서더니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


저는 술을 마신 적이 없고 단지 리스테린을 삼켰습니다.
리스테린으로 입을 헹구고 뱉는 게 일반적인데 저는 종종 마시기도 합니다.
마시면 속이 개운해지거든요. 그날은 속도 더부룩 해서 몇 잔 삼켰습니다.
이것이 음주운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willowpassdentalcare-mouthwash-for-dry-mouth.jpg
13LISTERINE2-superJumbo.jpg


리스테린은 알코올 농도가 20% 이상이니 몇 잔 마시면 금새 음주운전 수치가 나온다. 그러므로, 항변을 요약하면 간단하다.


취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그렇다. 도로교통법 제44조 1항에 쓰여진 대로 음주운전은 '술을 마시고' 취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걸 마시고 취하면 음주운전이 아니다. 죄형법정주의 아닌가. '불리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아무리 달리 해석해 보아도 리스테린을 술로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리스테린만을 마시고 운전했다면 명확히 음주운전이 아니다.


in dubio pro reo (불리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그렇지만, 리스테린을 음주수치가 나올 정도로 마셨다는 피고인의 말도 믿기 어렵긴 매한가지다. 피고인의 말을 믿었다고 쳐도 무죄 판결문을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피고인은 전혀 술을 마시지 않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기록을 살펴보아도 리스테린을 마셨다는 진술외에 달리 술을 마셨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뭐 이렇게 주절주절 써야되지 않겠는가.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를 떠나, 상급심 파기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 당시 사건에서 피고인은 대법원까지 다투었지만, 결국 음주운전 유죄로 확정되었다.



https://blog.naver.com/pyowa/222107463637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마음속의 킥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