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노병의 여자친구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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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고 걸을 때, 살과 살이 맞닿을 때 체온이 느껴진다. 나는 그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재산을 쌓고, 지식을 정리하고, 글을 쓸 때도 살아 있음을 느끼지만, 몸으로,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통장의 잔고와 전문지식은 실물로서의 내가 아니다. 겨우 데이터 안에 들어가 있는 나다. 데이터라는 것은 사라지면 흔적마저도 없다.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주화를 들고 참전용사댁을 찾아갔다.

94살 할아버지가 혼자 살고 계셨다. 돌멩이 흙길에게는 토끼풀이 가득했다. 올라간 길위에 쓰러지기 직전의 참전용사 집이 있었다.

집은 한쪽으로 기울었고, 지붕은 곳곳이 내려 앉았다. 문틀도 더 이상 직사각형이 아니었다. 모든 것에 먼지와 녹이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관리되고 있는 집이었다.

자주 사용하는 것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고, 깨끗했다.

작은 마당에는 할아버지가 드실 야채가 종류별로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할아버지 표정은 너무나 밝았다. 도회지에서 섬마을까지 자신을 찾아와주어서 뿌듯해 하셨다.

무엇보다 옆에 계신 할머니에게 뿌듯해 하신 눈치였다. 동네 아주머니가 할아버지 여자친구라고 귀뜸해주셨다.

같이 밥도 먹고, 함께 채소도 키우고, 가끔씩은 손을 잡고 걷기도 하시겠지.


처음부터 느껴졌던 뿌듯함에는 설레임이 깔려 있던 것이었다.

누구라도 어느 날 쓰러져 병원이나 요양원으로 가시게 되면 계속되지 못할 애틋한 설레임이었다.

그만큼 소중한 여자친구였다.


우리가 돌아오고 난 후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다시 한국전쟁 이야기, 국가유공자 이야기를 하실 것이다.

두분이 손을 잡고 마을을 산책할런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에게 설레임이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나라서 부른게로 전쟁갔제.

여그가 처가동넨디, 퇴직하고 여그서 오래 살아부렀어. 인자 내 고향이여.

동네에 같이 전쟁갔던 참전용사가 여럿 있었는디 다 죽어부렀어.

나보다 젊었는디 먼저 죽어 불드라고.


바쁠튼디 잊어불들 않고 이렇게 멀리까지 와주어서 정말 고마워. 이-."

<신안군에 살고 계시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94살의 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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