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은 여름마다 한반도에 상륙한다.

(감사에서 살아남기)(49)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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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여름마다 한반도에 상륙한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공무원은 국가의 손과 발이므로 국민을 위해 일한다. 민원은 개인이 국가에 어떤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므로, 민원처리는 공무원의 당연한 임무이자 존재이유다. 공무원은 법령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므로 민원인이 원하는 대로 처분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의신청, 행정심판,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 민원인은 불복절차와 더불어 다양한 방법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고 한다.


일단 담당자에게 전화한다. 이유보다는 결과다. 수긍이 되지 않으면, 기관장이나 부서장 바꾸라고 한다. 안 되는 것을 해달라는 민원인과 대화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행정 불만족에 대해 한참을 훈시하기도 한다. 공무원도 직장인이고 일할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민원인 한 명과 30분 넘게 전화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대충 받을 수도 없다. 통화내용을 녹음하는 사람들도 많고, 불친절하면 ‘국민신문고’에 불친절했다고 신고하기도 한다. 민원처리에 부조리가 있다며 감사실에 신고할 수도 있다. 민원만 없어도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는 어느 사무실에나 나온다.


또다시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민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한다. 여기에 더해 대통령실,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 감사실, 수사기관 등 여러 곳에 신고한다. 지역구 의원실에도 찾아가 하소연하기도 하고, 의원실은 담당부서에 자료요청을 한다.


민원인의 입장에서도 여기저기 전화하고, 방문하고, 신고서 작성하면서 짜증은 높아져 간다. 특별민원인으로 바뀌어 간다. 전화를 하면 돌리고 돌려지고, 담당자는 부재중인 경우도 여러번이다. 전화연결이 되면 말이 좋게 나가기 어렵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은 전화를 끊으려고만 한다. 몇 달을 계속하다 보면 결과를 떠나 자존심의 문제로까지 도달하게 된다.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청사 민원실을 찾아와 높은 사람 나오라며 항의한다. 청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기도 한다. 마이크를 들도 담당자, 과장, 국장의 이름을 부르며 욕설에 가까운 험담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업무가 핸드마이크로 울려퍼지는데 업무에 집중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반복민원은 쉽사리 종결되지 않는다. 민원인은 민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법령, 훈령, 공개자료, 네이버, 유튜브 등을 찾아보며 점점 아는 게 많아진다. 담당 공무원 여럿을 거치며 그들과 나누었던 대화, 받았던 공문으로 담당부서의 대응방향을 알고 있다. 행정의 내용과 처분이 부당하다고 다투다가 어느순간 절차적인 부분도 문제 삼기 시작한다.


‘처음에 안내했던 것과 다르다.’, ‘법령에 규정된 기일내에 통지 받지 못했다.’, ‘전화가 불친절하다.’, ‘공문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 ‘일부는 사후에 수정된 것 같다.’는 등 다양한 민원이 추가로 제기된다. 정보공개청구도 제기하고, 요구범위도 넓혀간다. 담당 공무원은 허겁지겁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아차 실수하면 큰일이다. 특히, 민원인이 공공기관 근무자이거나, 근무했었던 사람이라면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때가 되면 담당공무원은 인사이동한다. 후임자에게 특별한 반복민원에 대해 인수인계하고 홀가분하게 떠난다. 새로운 직원은 그 자리를 맡아 내공이 쌓일대로 쌓인 민원인을 상대한다. 민원인의 레벨은 만렙을 향해가고 있는데, 담당직원은 레벨 1에서 대응해야 한다.


대응이 잘 되지 않을 때는 그저 듣는 게 정답이다.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법령, 규정, 매뉴얼에 있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혹시 만회하겠다고 여러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편의를 봐주거나, 어려운 일을 약속을 하거나, 공문의 내용을 임의로 고치면 안 된다. 좋고 좋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적극행정이며 업무능력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민원인이나 제3자가 편의를 봐주었다는 사실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물론 확률적으로 접근하면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다. 5 퍼센트의 위험이 있는 업무를 하고 그 위험이 발생하면 ‘나는 운이 없었다.’고 얘기할텐가. 5 퍼센트의 위험이라는 얘기는 스무 번을 비슷하게 처리하면 그 위험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얘기지 않은가. 민원은 새로운 민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 민원은 얼마나 자랄지 모른다.


열대의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태풍은 열대의 바다에서 사라진다. 그렇더라도 태풍은 여름마다 한반도에 상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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