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내 마음의 문장들'을 읽고
우울한 사람의 대부분은 마음 편히 만날 누군가가 없다.
우울한 사람이 밝은 사람을 만나면 같이 밝아지기 보다는 같이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고민으로 해결될 일이라면 우울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더욱더 우울해지게 된다.
우울한 사람은 신체적으로는 운동을 해서 뇌를 밝게 만들어줘야한다.
우울한 사람은 정신적으로는 밝은 사람이 있는 곳에 가야한다. 경험상 그 방법밖에는 없다.
운동이야 어떻게 마음만 먹으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밝은 사람이 있는 공간은 찾아내기 어렵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표정하게 지내기고 우울한 사람에게는 더욱더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주변에 밝은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을 찾아냈다.
무언가 산다는 것은 고르는 것이고, 고르면서 사람들은 설렌다.
무언가 골랐다는 것은 짧은 미래지만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에는 여럿이 오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은 눈을 마주쳐 같이 설레고, 같이 계획을 세운다.
보면서 알게된다. 행복이란 문제의 근원적 해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설레는 작은 순간들에서 행복은 불쑥 찾아온다.
우울함이 바로 사라지진 않겠지만, 행복으로 가려지게 될 것이다.
가려진 시간만큼 우울은 옅어지게 될 것이다.
다자이오사무는 야마자키 토미에와 강물 투신하여 함께 죽었다.
함께 죽었다는 것은 평소에 함께 죽음에 대한 교감이 있었다는 말이다.
우울함이었을까. 행복을 위한 것이었을까. 알 수 없다.
상상하지 말자. 자살에 대한 모든 억측은 무례한 것이니까.
다자이 오사무의 글을 잘 읽었다.
매력적인 작가다.
=============<이하 발췌>
자부심을 잃은 남자의 모습만큼 추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아, 돈이 없다는 건 얼마나 두렵고, 비참하고, 희망 없는 지옥인가.
당신에게 모험심이 없다는 것은 당신에게 믿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괴로운 일이 이렇게 한꺼번에 연이어 일어나는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괴로움이 괴로움을 낳고, 슬픔이 슬픔을 낳고, 한숨이 한숨을 더한다. 나 자신의 고뇌에 너무나 괴로워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부끄러움 많은 생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죽는 것 역시 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목숨 걸고 뭔가를 하는 것이 죄인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나약함과 고뇌는 죄인가.
죽는 사람은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 나는 죽지 않겠다. 살아서, 나의 숙명을 다할 것이다. 살아가는 것에 아무 의욕이 없을 때는, 자살조차 할 수 없습니다. 자살은 오히려 살아 있는 것에 의욕을 느끼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나는 자살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도 갖고 있지 않다. 적어도 그의 실생활에 관한 것이라면 말이다. 모든 억측은 무례하다. 인간은 죽는다. 그 사실 하나만 믿으면 충분하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 내야만 하는 것이다. 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죽음을 이웃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보다도, 한 송이 꽃의 미소가 더 몸에 사무친다.
살짝 풀을 만져 보았습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행복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끝내 더는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 버렸다. 행복은 하룻밤 늦게 찾아온다.
행복은 불쑥 찾아온다. 발소리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그 공백의 시간을 노려, 불쑥 찾아온다. 희한한 일이다.
아무리 신주쿠 거리를 왔다 갔다 돌아다녀 본들, 좋은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뻔한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이란, 그것을 어렴풋이 기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입니다.
노년이라는 것을 맛보지 못하고 그는 가 버렸다. 부끄럼쟁이야말로 뼛속까지 멋을 부리는 법이다. 아마도 그는 노년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점점 나이를 먹습니다. 그것뿐인 일을 하려고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을가요. 이미 보아버린 공허, 아직 보지 못한 초조와 불안, 그것들만의 연속으로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 온 힘을 다해 아득바득 살다가 죽는 건 아닐까.
웃음거리가 되어, 웃음거리가 되어, 강해진다.(무뎌지는 것일수도 있다.)
인간은 불행의 밑바닥에 떨어져 뒹굴면서도, 어느샌가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더듬더듬 찾아내기 마련이다.
신기하게도 큰 괴로움 뒤에는 반드시 큰 기쁨이 따라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학처럼 정확합니다.
너무도 먼 산을 가리키며, 저기까지만 가면 전망이 좋아, 라고 한다. 그 말이 분명 티끌만큼도 거짓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지금 이렇게 죽을 듯이 배가 아픈데도, 그 아픔은 못 본 척하며, 자, 조금만 더 참아, 저 산꼭대기까지만 가면 끝이야, 하고 오직 그것만 가르친다. 어른이 되면, 우리의 괴로움과 외로움은 우스운 거였다고 아무렇지 않게 추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완전히 어른이 될 때까지 그 길고도 짜증 나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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