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아는가. 내게 엄청난 글재주가 있을지.

(책 한번 써봅시다. 장강명)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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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쓰기에 재주가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글쓰기는 좋아한다. 마흔이 넘어서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다. 책을 읽고 독서노트를 쓴다기 보다는 독서노트를 쓰는 순간을 위해 책을 읽는다.


글을 쓰다가 영감이 신내림처럼 내려온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겨우 글감 단어하나를 찾았는데도 몇 백자를 써내려 가며 나의 재능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아득히 지나간 과거의 순간 속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둘러보면 어두운 바닥의 기억들이 떠오르며 선명하게 내 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끝없는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가로등 아래 눈길을 내려가다가 카메라로 나를 내려 찍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건널목을 건너오는 털모자 아저씨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며 걸어다니도 했다.


모두 흥미진진한 자뻑의 순간이다.


글쓰기는 기예의 영역이다. 쓸수록 는다. 사십대에 블로그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스스로 돌아봐도 많이 늘었다. 독서광들의 공통된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막연한 꿈이어선지 다가가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멀어져간다. 장강명은 작가의 기준을 한 줄로 말한다. '작가란 하나의 주제로 원고지 600매를 쓴 사람이다.' 600매를 쓸 수 없는 삶은 없겠지만, 아무나 600매를 쓰지는 못한다.


훌륭한 이야기꾼들이 불쑥 이야기를 시작하듯이, 글쓰기도, 작가가 되는 것도 출발이 중요하다. 고민은 그 다음이다. 600매 글쓰기에 도전해보자. 나에게 많은 성장과 변화를 안겨줄 것이다.


혹시 아는가. 나에게 엄청난 글재주가 있을지.


https://blog.naver.com/pyowa/222179541931





(이하 발췌)


작가가 아니라 저자를 목표로 삼으라.(한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매 쓰기)

원고지 30매 분량의 글은 막힘없이 뚝딱 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필력이 대단하거나 운이 엄청나게 좋다면 원고지 100매짜리 글도 술술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원고지 600매는 불가능하다. 책을 쓰는 과정은 사람의 사고를 성장시킨다. 한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쓰려면 집중력과 인내력이 필요하고, 다방면에서 검토해야 할 사항들이 생긴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런 성장과 변화를 의미한다.


어떤 일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절대로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지난주에 생긴것이 아니라면, 몇 년 된 것이라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써야 하는 사람이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글쓰기는 학문이 아니라 기예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예'의 사전적 의미는 '예술로 승화될 정도로 갈고닦은 기술이나 재주' 이것은 배우는 것이 아니다. 넘어지고 구르면서 한참 시간을 들여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다. 깨침과 숙달 사이에 시간이 걸린다는 게 기예의 특징이다. 나는 뇌에도 일종의 근육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사색을 자주 할수록 사색하는 힘이 커지고, 에세이를 쓸수록 나만의 철학이 딴딴하게 영근다.


모든 영감은 다 불완전한 형태로 온다. 그걸 완성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영감은 신기한 곳에서 신기한 것을 보는 데서 얻을 수도 있지만, 평범한 걸 신기하게 봐서 얻을 수도 있다. 영감을 불러일으키려면 먼저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고 본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뇌에 일정 시간 이상 압박을 줘야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목욕을 할 때 비로소 뒤늦게 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인물의 욕망과 두려움이 느껴지게 써야 한다. 약자라고 해서 욕망이 없는 게 아니고, 강자라고 두려움이 없지 않다. 욕망은 악이 아니며, 모든 인간은 욕망이 있다. 그것은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인간 존재의 핵심이다. 약자에게 욕망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약자에게는 약자성만 있어야 한다고 믿는 작가는, 약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사실 욕망과 두려움은 분리되지 않는다. 어떤 인물의 고통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그의 욕망을 함께 전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욕망과 두려움은 모양과 방향이 모두 제각각이며,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사실도 강조하고 싶다. 얼마나 설득력 있게 긴장을 조성하고 해소하는가? 욕망과 두려움이 충돌하면 긴장은 더 치열해진다. 욕망이 충족되거나 두려움이 현실화되는 과정은 언제나 엄청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또 독자는 욕망과 두려움이라는 행동 동기에 쉽게 설득된다. 독자는 기꺼이 이야기에 몸을 맡기고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된다.


정직하게 잘 쓴 글은, 거기서 묘사하고 있는 사건뿐 아니라 그 글을 쓸 때 작가의 자세도 독자에게 보여준다. 내면의 고통과 혼란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한 인간의 모습은 늘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글의 힘은 참 오묘하다. 정확한 언어로 자기 안의 고통과 혼란을 붙잡으려 할 때, 쓰는 이는 변신한다. 그런 글을 쓰면 쓸수록 그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간다. 에세이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장르다. 글을 쓸수록 당신은 더 개성적인 사람, 자기 세계와 무게중심이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구체적 단상이 추상적 사고로 발전하려는 간질간질한 순간을 느끼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방법. 인간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추상적인 사고로 도약할 수 있는 존재다.


사람의 개성은 기실 충동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오히려 사람들의 충동이야말로 대개 비슷하다. 개성을 발견하고 키우려면 저지르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 느끼지 말고 생각해야 한다. 충동은 마음이라는 바다 표면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물결과 같다. 또는 동굴 입구에서 부는 바람과 같다.


이어지는 주제로 책을 세 권 낸 저자는 그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그러면서 강연과 방송 출연 기회 등이 생긴다.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강연 수요처나 방송사들은 수천수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소셜미디어 스타보다 한 분야에서 책 세 권을 낸 저자를 훨씬 더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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