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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Sep 13. 2023

글에 빠져들면 몸이 사라진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https://blog.naver.com/pyowa/223210255202


글을 쓰다보면 순간 글에 빠져든다. 자주 쓸수록 그렇다. 글에 빠지면 나의 몸이 인식되지 않는다. 나는 존재하지만 몸은 사라진다. 생각은 몸의 한계를 벗어난다. 공간의 한계도, 시간의 한계도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글을 쓸 때보다는 못하지만, 읽을 때도 그렇다. 때로는 작가와, 때로는 등장인물과, 때로는 상황에 공감한다. 때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읽고 쓰며 나는 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몰입의 순간을 위해, 이 순간이 좋아 나는 읽고 쓴다.


최은영 작가는 "퇴근해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라고 썼다. 


최은영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지난 번 장편은 뭔가 나와 맞지 않았었다. 이번 단편집은 내가 좋아하는 최은영 작가로 돌아온 듯해서 참 좋다. 책 속지에 있는 사진을 보니, 소녀 느낌이 나던 최은영 작가는 사라지고 단단한 어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단편집의 첫 번째 소설은 표제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다.


용산참사가 배경으로 스치듯 지나간다. 그날 운전하며 그 앞을 지나갔다. 불이 나고 있었고, 경찰은 컨테이너로 진압하고 있었다. 용산역 앞 대로변이 아니었다면 경찰이 무리하며 진압하지 않았을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모든 재산을 빼앗기는 상가 임차인들도 안타까웠고, 불 속에서 대치하는 경찰들도 안쓰러웠다. 용산을 지나 30분쯤 후에 집에 도착해 티비를 켰다. 여러 시민과 경찰이 그 불 속에서 죽었다는 뉴스가 반복되었다.


30분 전과 30분 후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점거했던 시민들은 30분 후를 상상이나 했을까. 불길에 뛰어들었던 경찰관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을까. 나는 그 앞을 평온하게 운전하면서 사회면 뉴스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우리는 30분 후의 세상을 알 수 없다. 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읽고 쓰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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