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길동 Sep 15. 2023

돌아올 수 없는 화살이 되어 결전의 전장으로

(몫)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https://blog.naver.com/pyowa/223212715379



삶에는 각자의 몫이 있다.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있다는 말도 아니고, 스스로 분수를 알라는 말도 아니다. 스스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만큼만 우리는 산다. 그것은 나의 몫이자 나의 한계이며,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의 독립이다.



2인칭 소설은 어색하다. 나의 삶 전체를 바라보는 누군가는 있을 수 없다. 나의 삶 전체를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없다. 나조차도 내 삶 전체를 바라볼 수 없고, 내 삶 전체를 이야기할 수 없으니까. 누가 나의 삶에 대해 가타부타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이가들면 이런 불평도 필요없다. 어른이 될수록, 나이가 들수록  누구도 나의 삶에 대해 품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타인의 삶을 다 알아야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는 만큼, 아는 기간동안, 공감하는 만큼만 얘기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소설 '몫'은 2인칭 소설이다. 죽은 '혜진'을 당신이라 부르며 화자인 내가 '혜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화자는 혜진의 삶을 알지 못하지만 곁에서 지켜보았던, 한동안은 지켜보지 못했던, 이해할 수 없었던 혜진의 삶에서 알고 있는 것과 공감하는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혜진은 글쓰기와 현실의 간격에 괴로워하며 글쓰기를 포기한다.글쓰기에 재능이 없다 생각했던 화자는 글쓰기가 직업이 된다. 



'글쓰기'



이 단어는 내 시선을 집중시킨다. 인파 속에서도 연인을 알아보듯, 가득 찬 활자 속에서도 '글쓰기'라는 내 눈에 바로 들어온다. 글쓰기는 덩어리같은 직관을 각각의 모양으로 배치하여 비로소 생각이 된다. 그 희열은 무엇으로도 대신하기 어렵다. 



그런데 혜진은 글쓰기에 취해 현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글쓰기에 자위하는 사람들에 실망했다.



대학교 1학년때 선배들은 집회에 나가기 전에 '결전가'를 불렀다. 나는 문약文弱에 빠져 덜컥 겁이 났었다. 결전가의 선창이 너무나 강력해 나는 언제나 쭈뼜거렸다. 



'돌아올 수 없는 화살이 되어 결전의 전장으로'  '결전가'


https://youtu.be/SzUbI9u4HPQ







작가의 이전글 글에 빠져들면 몸이 사라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