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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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은 내가 경험한, 그리고 경험할 시간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가 겨우 내 시간이다. 그 시간을 조각내 본다. 조각낸 시간을 칸칸이 담아본다. 칸칸이 담아 놓으니 시간이 실감된다. 담겨 있을 나의 시간을 떠올려 본다. 기쁜 일, 슬픈 일, 행복한 일, 후회스러운 일이 담겨 있다. 어떤 것은 생생하고, 어떤 것은 겨우 떠오르고, 어떤 일은 잊혀졌다. 그렇더라고 그 일은 그 칸에 담겨 있다.
물질이건 시간이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것들은 자취를 남긴다. 시간은 자취를 남기면서도 통째로, 그대로 어딘가에 담겨 있을 것만 같다. 줄을 맞춰 소풍길을 걸었던 날, 어머니와 버스를 타러 걸어가던 길, 화장품을 사던 젊은 어머니,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시던 아버지, 마루에서 함께 놀던 동생들. 모두 어느 시간의 칸에 있을 것만 같다. 어느 순간 떠올라 '너의 그때는 사라지지 않았어'라고 말할 것만 같다.
가만히 떠올려본다.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고, 후회스러운 모든 것이 애틋하다.
다가올 날, 남아 있는 나날을 생각해본다. 그 시간도 칸칸이 담길 것이다. 이미 어느정도는 담겨져 있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