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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들은 숙명에 최선을 다한다.

(만경강하구, 자전거여행)(6)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241063345


이라크는 우기와 건기가 명확히 나뉜다. 우기는 6개월인데 매일 30분정도 비가 온다. 매일 비가 오니 모든 땅에선 풀이 돋아나 초록의 세상이 된다. 건기도 6개월인데 비 한 방울 오지 않는다. 동물들은 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지만 땅에 박혀 있는 식물들은 그 자리에서 말라 죽는다. 그러니 이라크 들판에는 나무가 없고, 초록의 풀이거나 죽어 말라버린 풀로 가득하다.


이라크에서 6개월 근무했었다. 4월의 어느 날이었는데 모든 풀에 꽃이 피었다. 커다란 풀도, 바닥에 기어가는 풀도 꽃을 피웠다. 예쁘기도 했지만 이상했다. 꽃피는 때가 어떻게 모두 같을 수가 있단 말인가.


곧이어 알게 되었다. 모든 꽃은 건기를 앞두고 있었다. 꽃에게 건기는 죽음이다. 지금 꽃을 피지 못한다면,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지 못하고 절멸한다. 빨리 피어도, 늦게 피어도 꽃은 씨앗이 되지 못한다. 모든 풀이 꽃을 피우니 벌나비에 선택을 받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모든 풀은 한꺼번에 기어코 화려한 꽃을 피웠다. 간절히 벌나비를 기다리며 한꺼번에 흔들거렸다.


꽃은 씨앗을 퍼뜨려야하는 숙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갈대는 바람으로 씨앗을 날린다. 벌나비가 필요없다. 화려한 꽃도 필요 없다. 갈대에게 필요한 것은 바람이다. 바람을 타고 좀 더 멀리 멀리 날아가야 한다. 그래서 갈대는 바람에 흔들린다. 바람을 따라 흔들렸다 돌아오면서 그 반동으로 씨앗을 털어낸다. 씨앗은 멀리멀리 떠나간다. 바다에 앉거나 아스팔트에 내려앉은 씨앗은 죽고, 육지 가까이 내려앉은 씨앗은 다시 갈대로 태어난다. 갈대는 그 먼 운명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그저 씨앗을 퍼뜨려야 하는 숙명에 최선을 하다며 흔들거리고 있을 뿐이다.


도요새는 갯벌에 입을 휘저어가며 먹을 것을 더듬는다고 한다. 넘어가는 것보다 내뱉는 것이 많지만 부리로 갯벌을 더듬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도요새도 숙명에 최선을 다하며 휘적이고 있을 뿐이었구나.


나에겐 어떤 숙명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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