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에서, 자전거여행)(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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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소설이나 연극과는 많이 다르다. 삶 속에서는 언제나 밥과 사랑이 원한과 치욕보다 먼저다."
소설과 연극은 사건과 인물로 꾸려져 있다. 삶의 대부분은 사건이 아닌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 삶은 소설이나 연극이 아니다. 김훈은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고 썼다. 일상에서 사건이 나올 순 있어도 사건이 일상이 될 수는 없다. 밥과 사랑이 사건과 인물보다 먼저라는 걸 알겠다.
"갯고랑에서 끌어올린 바닷물이 6단계의 저수장을 거치면서 증발하고 마지막 결장지에서 소금을 이룬다. 염전 사람들은 소금이 결장지 바닥에 엉기는 사태를 '소금이 온다.'고 말한다. 소금은 멀리서 오는 소식처럼 조용히 결장지 바닥에 나타난다."
"재래식 천일염에서는 쓴 소금을 가장 나쁘게 알고, 짠 소금이 그 다음, 짜고 또 향기로운 소금을 최상품으로 친다. 염전 사람들은 날이 흐리고 비가 올 조짐이 보이면 결장지의 물을 땅 밑의 저장고 속으로 감춘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 뜨거운 폭양 아래서 짜고 향기롭고 굵은 소금은 익는다. 이런 소금의 삼투력은 깊고 그윽하다."
"염전의 생산방식은 기다림과 졸여짐이다. 염전은 바다를 밀어낸 인공의 들이고, 수산업과 농업의 사이에 끼여 있는 완충의 평야다. 염전은 잡거나 기르지 않고, 캐거나 따지 않는다. 염전은 기다리는 들이다. 염전은 산업자원부 산하에 등록되는 광업이다."
나에게 서해는 염전과 갯벌이다. 우리 집 앞에 염전이고, 갯벌이었다. 방문을 열고 10발을 걸으면 염전이었다. 소금은 갑자기 생긴다. 여러날 말린 소금물에도 소금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결장지에 있는 소금물에도 소금이 될만한 흔적은 없다. 그러다 갑자기 소금이 생긴다. 마술과도 같이 저녁에 인부들이 고무래로 긁으면 소금이 쌓인다.
6살의 나는 너무나 궁금했다. 어른들에게 물어보아도 햇빛에 말랐으니 소금이 된 거라는 하나마나한 말 뿐이었다. 어느 날 나는 결심했다. 내 눈으로 소금이 되는 순간을 꼭 보리라고. 그 날은 염전에 한 참을 쪼그려 앉아 있었다. 곧 소금이 올 것이라 믿었다. 소금의 기색이 전혀 없다가 어느 순간 소금이 바닥에 모여 있었다. 염전이 소금이 나를 속이는 것 같았다.
"달이 하루에 두 번식 물을 끌어당겨서 바다를 부풀게 한다. 강은 바다를 내륙 깊숙이 받는다. 동해로 흘러드는 강들은 날카롭게도 명징하고 눈부시다. 동쪽의 강들에는 산의 격절감이 녹아서 흐른다. 가파르고 빠른 강들이 일출을 향해 나아간다. 서해에 닿는 강은 들을 흐른다. 그래서 서쪽의 강들은 유장하고도 아득하다. 크고 흐린 강들이 해 지는 곳을 행해 느리게 나아간다. 서해는 그 많은 강들을 받아내고 또 거슬러 올라간다."
"서해는 깊이 밀고 멀리 당긴다. 육지 쪽은 뻘이고 바다 쪽은 모래이다. 썰물 때 갯벌을 가로질러서 끝까지 걸어가면 밀물에 휩쓸려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만경강은 아직도 파행하는 자유의 강이다. 큰 댐이 없고, 하구언이 없고, 시멘트 제방이 없고, 강변도로가 없고, 수중보가 없다. 비틀거리면서 굽이치는 유역은 언제나 넓게 젖어 있다. 바다가 수평선 너머로 물러간 저녁 무렵의 하구에서, 강의 크나큰 자유는 아득한 갯벌 위에서 헐겁고 쓸쓸했다. 갯벌의 지평선 너머에서 바다는 풍문처럼 반짝이면서 밤의 내습을 예비하고 있었고, 강의 대안 쪽에서 산맥은 기세를 낮게 죽여가며 노을 속으로 잠겨갔다."
"공깃돌만 한 콩털게와 바늘 끝만 한 작은 새우들도 가슴에 갑옷을 입고 있다. 그 애처로운 갑옷은 아무런 적의나 방어 의지도 없이, 다만 본능의 머나먼 흔적처럼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