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길동 Nov 25. 2023

지나고보면 다 별거 아니지 않던가.

(시대예보:핵개인의 시대, 송길영)

https://blog.naver.com/pyowa/223274674552


<'세대'의 계보>


세상은 언제나 빠르게 변했다. 4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변화 속도가 빨라진다고 했다. 4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새로운 세대를 자신과는 다른 종족이라고 불렀다. 


'세대차이', '신세대', 'X 세대', '386세대', '밀레니얼 세대', 'MZ세대', '알파세대'


'세대'라고 싸잡아 얘기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득권이었다. 새로운 젊은이들은 원래 자신들은 이랬고, 관심사는 달랐으며, 각자 사랑하기 바빴다.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존 세대를 그들을 무슨 '세대'라 부르며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음을 정당화시켰다. 젊은이들이 중년이 되었을 때, 새로운 젊은이들을 다시 무슨 '세대'라며 불렀다. 새로운 중년은 기존의 중년을 그대로 따라했다. 그렇게 무슨 '세대'는 계보를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속도는 상대적인 것이다. 기준점이 있다는 얘기다. 시대에 속도가 있다면 기준은 누구인가. 젊은이다. 젊은이의 속도가 시대의 속도다. 그들을 무슨 '세대'라고 부르며 자신의 도태를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려면 시대의 속도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혹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가만히 서 있는 건 아닌가. 여러분도 젊어봤지 않던가. 조금만 노력하면 시대의 감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지나고 보면 다 별거 아니지 않던가>


언제나 새로운 것은 중요해보인다. 포탈은 계속 반짝이고, 새로운 소식이 왔다고 알린다. 중요하니 꼭 봐야된다고 유혹한다. 


마이카 시대, 1인 1 PC시대,  Y2K, 유비쿼터스, 월드웹와이드의 시대, 검색엔진의 시대, 인터넷 카페시대, 싸이월드시대, 메타버스의 시대, 가상현실의 시대, 스마트폰시대, 유튜브의 시대, SNS의 시대, AI 시대.


지나고 보면 다 별거 아니었다. 내 기준엔 그렇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모든 것들은 다른 기술이 나오면 잊혀졌다.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사람이었다. 사람은 태어나고, 학창시절을 거쳐, 사랑하고, 돈을 벌고, 건강하게 울고 웃다가, 늙어 죽는다. 나머지는 다 호들갑이었다. 야후가 등장했을 때, 더 이상 아무것도 외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폰의 Siri가 등장했을 때도, 말로 물어보면 다 얘기해준다고 했다. 지나고보면 그런 것들이 삶에 영향을 미쳤지만, 다 별거 아니었다. AI도 지나고 보면 다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별거 아닌 것들이지만 나와 상관없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시대와 교류할 방법이 없다. 잊혀질 기술, 잊혀지는 삶의 방식이라해도 시대를 교류하며 살아가야 한다. 



<절대 랜덤(random)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지금 시대의 장점이자 특징은 랜덤의 시대라는 것이다. 지위와 직책을 떠난 새로운 관계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시간, 장소, 성별, 나이, 지역, 직업, 부의 정도를 뛰어넘어 연결되고, 만나기도 한다. 권력자만이 가졌던 대중과의 매체를 개인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돈 버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도 랜덤의 시대에 맞게 변하고 있다. 


조직과 관계에 충성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충성과 의리라는 당위는 사라지고 있다. 쉽게 만나고 쿨하게 헤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사실만이 의미가 있는 시대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려면 보여줄 매력이 있어야 한다. 읽고, 배우고, 존경만 해서는 다른 랜덤이 당신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당신의 스타는 다른 랜덤을 옮아탈 것이다. 누군가 떠나간다면 서운해하지 말자. 그의 취향이 바뀌었거나, 나의 매력이 바뀌었거나 둘 중 하나일테니까.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않은가.



<‘멋지게 나이드는 것’이 아니다. ‘멋진 사람이 나이가 든 것’이다.>


무용담, 뉴스, 지인들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이야기가 없다. 고3 때 성적, 대학, 학위, 지위와 직책, 자격은 그때 그 순간만을 말할 뿐이다. '몇 년도', '몇 년도'를 짚어가며 이야기하는 당신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라떼를 시전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멋진 이야기라해도 '멋졌던' 당신은 말할 뿐이다. 매력이란 '지금 당장'이어야 한다. 지금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할 얘기가 별로 없는가. 그럼 만들자. 뭐라도, 작은 거라도 하나씩. 그렇게 조금씩 ‘매력’을 쌓아가자.



<관계를 떠나 살아갈 수 있으려면>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시간과 관계’로부터 자유 아닌가. 돈 버는 이유 아닌가. 랜덤의 세계인만큼 상대도 나도 언제건 떠날 수 있다. 무엇이든 그만둘 수 있으려면, 새롭게 시작하려면 관계를 떠나 살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전제는 생계다. 생계에서 얽힌 자유로운 관계란 존재할 수 없다. 


조선의 사림은 왜 조정해서 당당했는가. 신념과 패기가 있어서? 그렇지 않다. 가족이 걸린 문제에서 패기만으로 모든 걸 포기하기란 어렵다. 사림은 돌아갈 곳이 있었다. 고향에 가면 사원이 있었고, 문중이 있었고, 땅이 있었다. 나라에서 나오는 녹봉은 그들에게 생사의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돌아갈 고향도, 문중도, 땅도 없으니, 돈을 벌고 돈을 굴려야만 한다. 이것이 관계의 기본이다. 생계가 얽힌 자유로운 관계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돈을 벌고, 돈을 굴려야 한다. 그러면서도, 매력을 쌓아나가야 한다. 


https://youtu.be/IQgIRZFhQPs




작가의 이전글 무용한 것의 존재증명, '그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