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길동 Nov 23. 2023

무용한 것의 존재증명, '그냥'

(또 못 버린 물건들, 은희경)(2/2)

https://blog.naver.com/pyowa/223272520083



나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해야할 마땅한 이유라는 것도 없다. 나는 '그냥' 존재한다. 존재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궁금해하고, 참지 못하면 묻는다. 사람을 가까이 하는 이유, 물건을 버리지 않는 이유, 그런 일을 하는 이유, 궁금할 것은 많다. 이야기를 돌려도 누군가는 기어코 답을 듣는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거나, 설명이 모호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갸웃거린다.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냥' 존재한다.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건 없건, 그건 상관할 바 아니다. 사람들을 이해시킬 마음도, 의지도 없다. 나는 '그냥' 의미있는 존재다.


나도 가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여러 채널에서 동시에 살아간다는 상상을 해본다. 채널이 3개일 수도 있겠지만, 300개일 수도 있겠다. 채널이 다르니 각자 살지만, 등장인물이 같으니 채널은 서로에게 전제사실이 되고, 때론 서로의 결과가 된다. 채널마다 여러 사람과 물건과 사건이 등장한다. 다른 사람이 볼 땐 무용해 보여도, 채널마다 소중한 사람과 물건과 일이 있다. 


어느 날 티비가 꺼지면 모든 채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 역시도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이다.



작가의 이전글 외마디 단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것들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