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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Nov 18. 2023

외마디 단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것들이다.

https://blog.naver.com/pyowa/223268486362



외마디 단어는 몇 개 없다. 쥐, 소, 닭, 개, 해, 달, 별, 낫, 삽, 차, 땅, 눈, 코, 입. 공통점을 찾았는가. 그렇다 모두 사람 근처에 있는 것이다. 외마디 단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것들이다.


내게도 추억의 외마디 단어가 있다. '키'와 '체'다. 키는 쌀껍질을 불어날리는 기구다. 밥을 먹으려면 언제나 키를 써야 했다. 체는 여러 구멍크기를 가지고 있는데 얇은 가루를 밑으로 떨어뜨려 불순물을 골라내는 것이다. 가루음식에 없어서는 안 된다.


키와 체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예전에 꼬마들이 이불에 오줌을 싸면 키는 머리에 씌우고, 체는 손에 들리고 소금을 얻으러 보냈다. 10살이었던 어느날 이불에 오줌을 싸버렸다. 젖은 이불느낌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던 나는 쥐죽은 목소리로 어머니께 이실직고 했다. 어머니가 이불을 정리하는 사이 옷도 벗겨진 상태에서 윗목에 쪼그려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바탕 혼줄이 나면서 정신없이 새벽을 보냈다. 다짐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나면서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싸겠다고 다짐을 계속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죄인으로 시무룩 있다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고, 여느때처럼 어머니는 아침밥을 했다. 부엌에서 나를 부르시더니 옆집 할머니네 가서 소금 좀 얻어오라고 하셨다. 투덜거릴 입장은 못되었고, 잠자코 어머니가 주신 것을 받았다. 아주 촘촘한 망이 있던 체였다. 체를 준 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너무 촘촘해서 소금을 충분히 받아올 수 있어 보였다. 그땐 오줌싸개에 키를 씌우는 것만 알았지 체를 준다는 건 전혀 몰랐다. 그동안 이불에 오줌을 싼 적이 여러번 있었지만 소금을 얻어오라고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전혀 눈치 못챘다.


농담도 잘하시고, 자상하신 옆집 할머니 부엌에 체를 들고 들어갔다. 할머니는 설겆이를 하고 계셨다. 할머니께 체를 내밀면서 말했다. "할머니 엄마가 소금 좀 얻어오래요." "소금얻어오라고 하디?" 차분히 말씀 하셨다. 행주를 꾹 짜시더니 내 뺨을 세차게 내려치시며 "어디 다 큰놈이 오줌싸고 소금얻으러다녀!!" 하시면서 소리를 치셨다. 행주의 차가운 물이 얼굴에 뿌려졌고 아무런 정신이 없으니 아픈 줄도 몰랐다. 


어찌나 놀라고 한 없이 서러웠던지 한참을 울면서 체를 들고 집으로 갔다. 어머니는 "소금 얻어왔냐?"하면서 나를 놀리셨고 "소금 안줬어"라고 심통을 부리며 말했다. 어쨌든 그 이후로 다시는 이불에 오줌을 안 쌌다.

 


어머니는 아침을 하고 계셨고, 그 옆엔 아궁이 불을 쬐는 멍멍이가 있었고, 부뚜막 위엔 고양이가 몸을 데우고 있었다. 물을 길러먹는 집인데, 이불까지 빨아야 했지만, 35살 어머니는 행복한 삶의 한 순간을 지나고 계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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