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길동 Nov 17. 2023

뭔가 느낌이 싸할 때

(2012년 밀목재 야간 업힐)

https://blog.naver.com/pyowa/223267215530



2012년 8월에 글을 다시 읽었다. 2010년 거여동 성당 신부님이 사탄과 어둠에 대해 강론하셨던 기억이 써 있었다.


"하느님께서 사탄을 창조하셨을까요?

창조하셨다면 무엇을 위해 창조하셨을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느님은 실제하고 사탄은 실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빛은 실재하는 것이고 어둠은 개념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완전한 어둠이란 것도 없다.

따라서 어둠과 싸울 수 없다. 실재하지 않는 것과 싸울 수는 없는 것이다.

하느님은 악도 지옥도 만들지 않았다.

우리는 어둠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빛을 추구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한다."

(2010년 거여동 성당 신부님.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요. 미사가 끝나고 인사를 마치면 언제나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신부님이셨는데 말이죠.)



그때 빛과 어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신부님 말과 반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 빛이 실재하고 어둠은 개념일 수도 있다면, 역으로 어둠이 실재이고 빛은 그 갈라짐일 수도 있겠다. 신부님의 강론은 철학이 깊었고 언제나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언젠가는 세례자 교육 강론을 하실 때도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할 것을 아셨을까요?

부활을 알고 계신상태에서 돌아가셨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무슨 의미가 있을가요?"



이 때도 여러 생각을 했다. 그즈음에 나는 막 세례를 받은 상태라 강론도 열심히 듣고, 신약성경도 밑줄 그어가며 모두 읽고, 평화방송 VOD 유료 강의도 열심히 들었다. 신부님께 많이 배웠는데, 이름도 기억할 수 없다니 아쉽다.



그나저나 저 때 자전거로 대전, 세종, 공주 동학사, 계룡, 대전 이렇게 한 바퀴 돌려고 했다. 동학사에서 계룡으로 넘어가는 길에 길다란 '밀목재'라는 고개가 있다. 밀목재 업힐은 업청나게 길고 계속 오르막이어서 라이더에게 휴식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힘들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걸을 순 없다는 자존심때문에 끝까지 올랐다. 



정상에서 잠깐 쉬는데 뭔가 기분이 싸했다. 설명이 되지 않지만, 음습한 곳이었다. 정상의 상쾌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곳이었다. 숨도 채 돌리지 않고 나는 바로 내리막으로 출발했다. 다운힐로 내려오는데 집중력이 흐려졌다. 산 길엔 아무도 없었고, 가로등도 없어 빛이라곤 자전거에 달린 라이트가 전부였다. 정상을 떠난 지 몇 분이 되었는데도 조금 전 음습함이 내 등에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내리막이니 브레이크만 놓으면 쏜쌀같이 내려가겠지만 브레이크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길밖으로 구르게 될 것이었다. 크게 다쳐 쓰러져도 아침이 되기까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날이 밝아도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다. 속도를 크게 줄였다. 내리막이지만 엉금엉금 내려갔다. 여전히 정신은 멍했고 서늘한 느낌은 등에 젖은 땀과 함께 붙어 있었다. 그래선지 계룡 성당에 갔었다. 계룡성당을 한 바퀴 걸으니 땀이 말랐고, 땀이 마르자 음습한 느낌이 떨어져 나갔다. 



그 다음 주에 사무실에 출근했다. 밀목재 넘어온 음습한 이야기를 했다. 직원들이 거기는 자전거 사고가 많이 나는 곳이며, 작년에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말라버렸던 음습함이 등에 싸하니 나타났다. 




작가의 이전글 삶이라는 회전목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