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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Dec 23. 2023

[청렴교육강사] 28사단 태풍전망대의 추억

https://blog.naver.com/pyowa/223301529818



1993년 3월 나는 군장을 메고 태풍전망대를 오르고 있었다. 2월 입대하니 색색의 세상이 초록과 고동색  세상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100km 행군에서 이제 겨우 10km쯤 걸었는데도 군장이 점점 무거워졌다. 40km행군할 때보다 가벼운 군장이지만 두 시간 행군하니 무게는 금새 똑같아졌다.


점심쯤 태풍전망대에 도착했다. 조용했다. 너무나 조용했다. 바람소리만 들렸다. 백 명이 넘는 훈련병이 도착했지만,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았다. 멀리 북한이 보였고, 가까이 북한군 보라는 입간판이 크게 있었다. '군생활 2년, 휴가 보장'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30년도 더 옛날의 이야기다.


지난 금요일 바로 그 태풍부대에 가서 '공정과 인권'을 이야기했다. 4년 전에 전역했으니, 야전부대에 방문한 것은 거의 5년은 된 듯했다. 낡은 군인아파트, 위병소, 넓기만한 사무실, 낡은 비품들을 보니 예전 군생활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영어공부를 하면 단어가 되살아나듯, 군복의 감각이 살아오는 것 같았다.


 '공정으로 지휘하기, 인권과 함께하기'라는 주제로 중령 이상 지휘관들을 교육했다. 일부는 현장에, 일부는 화상으로 등장해있었다. 교육 중간에 사단장님도 들어오시고, 교육 마치고 간부식당에서 사단장님 및 참모들과 점심을 먹었다. 사단장님도 병사와 같은 식판을 쓰고, 병사가 먹는 음식 그대로 같이 먹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인권침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강의중에 '커다란 수족관' 얘기를 한다. 



커다란 수족관에 오래된 물고기들이 있어요. 처음엔 답답했지만, 수족관에 살다보니 그리 답답한 줄 모르게 되었어요. 오래 살다보니 수족관 물이 엄청나게 깨끗해졌다는 걸 알아요. 


새로 물고기들이 들어와요. 너무나 답답해 해요. 헤엄쳐 유리벽에 부딪히고, 또 부딪혀요. 물이 텁텁하고 냄새가 난다고 투덜거려요. 


오래된 물고기들은 답답한 거는 금방 적응될 것이고, 물은 옛날에 비해 엄청나게 깨끗해진거라고 말해줘요. 새로 들어온 물고기들은 오래된 물고기들이 답답해 보이기만 해요. 그들의 무용담마저 한심해 보이기만 해요.


강사에게 강의보다 더 중요한 게 시간이다. 최소한 1시간 전에는 근처에 도착해 있어야 허겁지겁 하지 않을 수 있다. 10시30분 교육인데 동두천 도착하니 8시였다. 한적한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다. 내가 조금 괜찮은 사람이 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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