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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an 11. 2024

죽음을 미루기 위해 삶을 소모한다.

(뉘른베르크 여행, 헤르만헤세)

https://blog.naver.com/pyowa/223318980615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요양객'에는 '방랑', '요양객', '뉘른베크르 여행' 이렇게 세 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뉘른베르크 여행'은 헤세가 여러 도시를 거치며 낭송회를 한 여행기록이다.



죽음과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죽음과 고통을 미루는 데 인생을 쓴다. 죽음과 고통에 집중하느라 삶과 감각을 바라볼 틈이 없다. 삶을 감각하지 못하다 미뤄 놓은 죽음을 맞게 된다.



죽음을 미루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삶을 소모한다. 판단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유를 갖다대고, 그 이유에 이유를 다시 갖다 붙인다. 돌아보면 이유마저도 내가 만든 것이고, 내가 만든 것 같았는데 대부분은 남의 생각인 경우도 많다. 발화점같은 이유야 찾을 순 있겠지만 전체를 설명할만한 이유는 없다. 죽음을 미뤄 놓기 위해 삶을 소모한다.



헤세는 감각하고 사색된 것만이 삶이라고 말한다. 감각하지 않고 사색되지 않는 시간이라면 그것은 나의 삶일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그마나 빵이 아니다. 공기를 마시며 시간과 공간을 느끼는 것이다.



한 때 매월 하루 휴가를 내고 혼자서 '문득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단지 하루일뿐인데 자유로움의 크기가 한 달의 자유로움만 했다. 산길을 걸으면 더듬이가 생긴 듯 감각이 예민해졌다. 올 해부터 다시 '문득여행'을 해야겠다. 내키는 대로 도착한 어느 바닷가에서 날리는 바람을 맞으며 파도 소리를 듣고 있을 수도 있겠다.  



물론, 감각과 사색만으로 살 수 없다. 공기가 빵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나 자신으로 살아야됨을 잊어선 안 된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비열한 거리'라는 문장을 썼다. 비열한 거리를 가야만 하는 우리는, 비열해지기 쉽고, 더러워지기 쉽고, 두려움 속에 걷게 될 것이다. 비열한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현실의 나로 살아가려는 결단은, 얼마나 가슴벅차고, 애틋하고, 슬픈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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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열한 거리로 한 사내는 걸어가야 한다.

그 자신은 비열하지도 않고 ,타락하지도 않으며, 두려움도 없는 채로.

But down these mean streets a man must go who is not himself mean, who is neither tarnished nor afraid.

<simple art of murder>, Raymond Chand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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