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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Feb 25. 2024

콜라랑 치토스 넣어주세요.


https://blog.naver.com/pyowa/223364621343



서비스센터에 가면 직원이 밝은 얼굴로 맞아준다. 행정 민원실에 가도 공무원이 눈을 마주쳐가며 친절히 알려준다. 덩달아 고객도 민원인도 활기가 생긴다.


얼마전 아침일찍 구치소에 갔다. 새건물이어서 민원실은 넓고 쾌적했다. 9시 전이라 창구 커튼은 내려져 있었지만, 면회온 사람들이  많았다. 제복의 교도관들은 구내 커피숍에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면회객들은 10분의 만남을 위해 어두운 옷을 입고 새벽부터 달려나왔을 것이다. 성지에 도착한 순례객처럼 줄지어 앉아 있었다. 커피향이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어디서 봤더라?'


어딘가 익숙했다. '어디였더라?' '어디였더라?'  한 참 생각했다. '병원'이었다. 병원 접수처였다. 하얀 가운을 입은 밝은 의사와 간호사 뒤에, 보호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죄를 저지른 게 자신의 잘못이고, 몸이 아픈 것도 내 몸의 문제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보호자도 설명을 듣고 돈을 내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판사, 검사, 의사의 선고를 잠차고 기다리는 것 뿐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면 이렇게 했을텐데, 저렇게 했을텐데 후회하고, 자책해 보면서 생각마저 지쳐갔다. 좋은 변호사, 큰 병원에 돈을 써보지만 쓰는 돈이 효과가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가만히 있을 순 없으니 민원실과 접수처를 서성거린다. 


구치소에는 접견하는 변호사들로 가득했다. 변호사를 기다리는 수용자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었다. 석방되는 수용자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가족을 맞았다. 눈물을 글썽이는 가족들은 수용자의 손을 꼭 잡았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시는 오지 말자며 환한 얼굴로 구치소를 떠났다.


영장도 발부해 보고, 실형을 선고한 후 법정 구속을 하기도 했다. 무죄와 집행유예를 선고하여 석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두 법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구체적인 집행의 순간을 볼 일은 거의 없었다. 나의 일은 문서를 만드는 것이었고, 문서를 법원 서기에 건네주면  경찰과 교도관은 문서를 받아 사무실을 떠났다. 석방되는 순간 글썽이는 가족의 모습을 볼 일은 없었다.


얼마전 수용자 접견을 한 적이 있다. 몇 억씩 투자를 했던 수용자는 변호인 접견이 끝나가자 부모님께 꼭 전해달라는 이야기가 있다 했다. "메모할께요. 뭔데요?" " 콜라랑 치토스 꼭 넣어달라고 해주세요.영치금 30만원도요." 몇 억씩 굴리던 투자자의 부탁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몇 달 간 감사와 징계조사를 받고 있던 의뢰인과 커피숍에서 만다 조사대기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의뢰인이 너무 고맙다며 커피숍에서 울컥하셨다. "저는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 소중한 건지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반짝거리지 않는다. 익숙해서 존재자체를 알기 어렵다. 마시고 싶을 때 콜라를 들이킬 수 있는 것이, 가족과 밥을 먹고 시간제한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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