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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Mar 07. 2024

세상 모두를 사악하게 하소서.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2/4)

https://blog.naver.com/pyowa/223375770632


영원한 것은 안타깝지 않다. 안타까울 일이 없다.



폭격으로 불타버릴 줄 알았던 금각사는 패전이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거기에 그대로 서 있었다. 미군이 군용차를 타고 금각사에 들어와도, 미군장교가 술집아가씨를 데리도 자기 앞을 돌아다녀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거기 그대로 서 있었다. 금각사가 영원하게 되자 금각사와 함께 산다는 사미승의 믿음은 사라져 버렸다.



물체에 생명은 없겠지만, 생각은 있지 않을까 상상한 적이 있다. 무작위로 쏟아지는 눈송이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한 송이도 들어오지 않는다. 눈송이를 받아먹으려 뛰어가면 눈송이는 깜짝 놀란듯 벌려진 입 앞에서 급히 방향을 틀었다. 진달래도, 소나무도, 숲속 길도 생각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었다. 그러면 세상의 많은 것이 이해됐다.



생명은 사라지지만 물체는 영원하구나 생각이들다가도, 물체은 마모되지만 생명은 언제나 생생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진달래는 그 자리에서 피고지고 피고져 수 백을 생생하겠구나 생각했다. 무엇이 자연인지 상상했다. 시골 비포장 도로, 숲속 오솔길은 인간의 길인데 자연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생각했다.



물체와 생명, 자연스러움과 인공, 영원과 현재, 이성과 감성. 생각할수록 경계가 모호했다.



순간 순간 발견되는 나의 악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은 모두 나만큼은 사악하리라 상상하곤 한다. 상상만으로도 조금은 안심 된다. 가끔은 신에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나의 사악이 변할 수 없다면, 세상 모두를 사악하게 하소서. 나의 부끄러움을 숨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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