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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Apr 05. 2024

평범한 인간임이 느껴질때, 거장의 위대함이 공감된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1/3)

https://blog.naver.com/pyowa/223406823282


미술관에 관한 책도 아니고, 경비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속세를 떠나 출가하듯, 잡지 '뉴요커'를 그만두고 미술관 경비원으로 살아간 이야기다. 


브링리는 엘리트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이쯤이면 큰 성취를 이루었고 선배들처럼 차곡차곡 살면 남부럽지 않은 인생이라고 되뇌였다. 


뿌듯함 속에 취해있다가도 컴퓨터 프로그램의 부속품처럼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세월을 축적해도 생각과 느낌은 쌓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부속품으로 살다가 퇴직할 것이었다. 


어느 날 생물학자인 20대의 형이 죽었다. 부속품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인간 브링리로 살아갈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나머지는 모두 군더더기였다. 뉴요커를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경비원이 되었다. 그 후로 10년을 일했다.


소설이 장면을 낚아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라면, 그림은 장면 자체로 이야기한다. 현실은 움직이지만 사라져버리고, 그림은 멈춰있으나 남겨진다. 현실은 순간이 겹쳐져 어느 순간에도 집중하기 어렵지만, 그림은 순간을 골라내어 삶의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멈춰진 그림이지만, 그림 이전의 슬픔과 그림 이후의 숙명을 눈앞에 덩그러니 펼쳐 보인다. 그때서야 나는 나의 삶을 돌아본다.


화가이건 조각가건 작품에 이야기를 담는다. 형태로, 구도로 이야기를 만든다. 빛과 붓의 터치로 이야기를 과장하기도, 모호하게도 한다. 나는 거장이 자신의 유한함과, 주저함과, 부끄러움을 보여줄 때가 좋다. 가끔 숨겨진 재치를 발견할 때 미소가 돈다. 거장이더라도 나와 같은 평범한 인간임이 느껴질때, 그때서야 그의 위대함이 공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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