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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Apr 11. 2024

감각을 떠난 모든 것은 허상일지 모른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무라카미 류)(3/3)

https://blog.naver.com/pyowa/223412004673



생각을 생각할수록 정교해지지만, 자칫 남의 지식과 판단의 반복이 되기 쉽다. 남의 지식과 판단을 반복하다보면 나의 식견도 덩달아 떠오른 것 같다. 타인과 나의 생각은 겹쳐지고, 내 생각은 어디에 얼마쯤 존재하는지 모호해진다.


감각은 고유하다. 감각은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같은 느낌일 수 없다.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잘못 감각할 수는 있어도, 순전히 나의 감각이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감각에 대한 이야기다. 옳고 그름이 없는 세계, 누구의 판단이라도 거부하는 세계에 대한 소설이다. 번역한 양억관은 '감각을 떠난 모든 것은 허상일지도 모른다.'고 썼다.


며칠 전 한강공원에 책을 들고 갔다. 책을 읽으려고 스터디카페에 가려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돗자리를 들고 한강에 가는 사람들을 거슬러 가다 방향을 바꿔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한강에 가면 공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음이 있다. 공원의 소음은 넓은 공간감 덕에 맑게 들린다. 여러 감각이 내 주위를 감싼다. 젊은 남녀의 웃음소리, 은박깔판을 안고 걷는 노부부, 푸룻한 버드나무 새싹, 그 위에 까치집 두 개, 튜닝된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나를 중심으로 겹겹히 돈다. 인간의 소음이지만 자연의 소리처럼 부드럽다. 


책에 빠지면 한강에 있는지 감각되지 않는다. 읽다가 고개를 들면 벤치가 느껴지고, 주변의 소리가 들린다. 눈으로 주변을 스케치한다. 사람마다 얼굴과 표정이 다르다. 사람마다 이야기를 상상해보니 흥미롭다. 지금 느끼는 그들의 감각은 무엇일까 생각보니 나의 감각도 왠지 간질간질해졌다. 


무라카리 류는 엄청난 미인을 만났을 때 숨이 딱 멈추어버렸다고 썼다. 내 삶에 그런 감각이 몇 번이나 있었나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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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스쳐지나가면 누구든 뒤를 돌아보고,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누구든 숨을 딱 멈추어버리는, 그런 여자였다. 


무시무시하게 아름다운 미인은 대하기가 어렵다. 남자는 모두 몸을 움츠리고 만다. 


근시일까 눈동자가 턱없이 맑게 반짝이고, 입술의 움직임은 어딘가 다른 행성에서 온 미지의 생물처럼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무라카미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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