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발굴해내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법활극, 주진우)(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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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핵심능력은 법률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제출된 증거와 주어진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검사의 능력도 마찬가지다. 검사는 죄명을 선택할 수 있고 구속, 압수수색할 수 있으니 변호사보다 월등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 검사 이야기가 선택되면 엄벌되고, 변호사 이야기가 선택되면 선처받는다.
의뢰인들은 판검사, 변호사에 따라 유무죄와 형이 빠뀐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불평한다. 전관예우나 인맥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며 의심스럽게 본다. 과거의 사실이고, 법은 법전에 있으니, 정해져 있는 진실을 발견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의 진실을 발굴해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대로 말하면 진실히 밝혀지고 정의가 이길 것이라 확신한다. 재판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과거의 사실도 입증할 수 있는 사실은 제한되어 있다. 게다가 검사가 언제 어느순간 범죄사실을 바꿀지 모른다. 어떤 사실을 어떻게 모을지는 검사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다. 죄명을 바꿀 수도 있다. 처벌의 범위도 결단에 따라 늘거나 줄 수 있다. 수사기관의 권한은 처벌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처벌하지 않는데서 나오는 것 아닌가. 법률의 요건과 해석도 다양하게 엮여진다.
재판은 과거의 진실을 발굴해내는 것이 아니다. 재판은 진실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방어하는 사람이다. 진실과 정의가 임무가 아니다. 수사기관의 의도를 간파하고, 과연 증거가 어디까지 있을 지 짐작하고, 불리한 진술은 최대한 하지 않으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니 변호사의 스토리 만들어내는 능력은 천차만별이며, 능력의 차이도 크다.
증거의 왕은 자백이고 진술이다. 진술과 증거는 곧 사실이다. 그러니 진술을 잘 해야 한다. 자존감 강한 의뢰인들은 일단 말을 하고, 자료를 보여준다. 변호사가 만들어온 스토리의 전제사실이 한번에 무너진다. 변호인의 법적 이야기는 순간 허구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의뢰인에게 다짐받는다. '말을 많이 하시 마세요. 짧게 대답하세요. 나머진 제가 의견서로 제출하면 됩니다.'말한다. 의뢰인은 곧장 '당연하지요'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열 번 이상은 다짐을 받는데도 그게 쉽지 않다. 조사가 시작되면 변호사가 자유롭게 끼어들 상황이 안 된다. '말하지 마세요.'라고 중단시킬 수도 없다. 수사관들은 군더더기 같은 말 속에서 귀신처럼 중요한 부분을 낚아챈다. 휴식을 요청한들 이미 진술해버린 부분은 어떻게 하기 어렵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의뢰인과 몸신호를 약속한다. '제가 무릎이나 손으로 다리를 건드리면 말을 그만 하라는 신호입니다. 아시겠죠?' 이후론 조금 대응이 된다.
더 최악은 수사기관에서 다 진술한 후에야 변호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이때 변호사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미 자백했고 자백에 따라 증거는 모았을 것이다. 그 자백에 근거해서 참고인에게도 진술을 받아놓았을 것이다. 변호사로서는 그저 선처를 바라는 것 외에 할 것이 없다. 진술의 일관성을 깨가며 번복할 수도 있겠지만, 형사재판에서 진술의 번복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훨씬 어렵게 이야기를 만들어야하고, 난이도 높은 논리를 만들어야 하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그러니 조사받기 전에 변호사를 찾아가야 한다. 상담료 아깝다고 생각치 않아야 한다. 행정기관의 문답서도 마찬가지다.
사실을 유리하게 형성하는 것이, 귀신같은 법논리보다 백배는 중요하다.
판사도 검사도 진실과 정의를 위해 재판과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중이다. 일하는 중이므로 일이 쉽게 끝났으면 좋겠고, 결재가 잘 나왔으면 좋겠고, 이 일로 승진에 도움이 되면 좋을 뿐이다. 소명의식도 조금은 있겠지만, 다른 직업도 소명의식은 다 있는 거 아닌가.
수사가 시작되었다면, 정신 바짝차리고, 이기적으로 움직여 그들의 화살을 피해야 한다. '나부터 살고 봐야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