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요조)
이십대에는 삼십대가, 삼십대에는 사십대가 뻔해보였다. 사십대인 지금 오십대는 뻔해보인다. 오십대가 되면 육십대가 뻔해 보일 것이다. 물론 그 나이에 도착해보면 여러 설레임과 변화가 있을 것이다. 도착하기 전에는 상상이 안 되는 법인데도 뻔해 보인다. 그래서 조바심이 난다. 삶이 하나씩 하나씩 소모되고 있다. 육체만 늙어갈 뿐 어떠한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 같다.
늦기전에 다르게 살아 보고 싶다. 삶에서 늦은 때란 없다곤 하지만, 원할 때 시작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시간은 따로 없겠지.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다. 이거저거 신경쓰지 말고 내 방식대로. 관중이나 품평이 아니라 직접 선수로 뛰고 싶다.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평판이나 인맥따위 신경쓰지 않으며 살고 싶다.
글을 쓰며 지내고 싶다. 무얼하건 글은 쓸 수 있다. 안톤 체홉은 왕진 가는 마차에서 썼다지 않는가. 글은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은 관찰에서 나온다. 관찰은 생각을 통해 보았던 것보다 더 구체화되고, 생각은 글을 통해 원래의 생각보다도 더 풍요로워 진다. 경험하고 책을 읽으며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해보니 지금 직장도 승진과 자리는 신경쓸 필요가 없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기간이 보장된 프리랜서다. 지금이 글쓰기 딱 좋은 시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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