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좋았던 시간에, 김소연
삶의 모든 것을 멈추고 여행을 가자. 목적이나 쓸모 따위는 버리고 그저 여행을 가자. 여행을 붙잡는 일이 있다면 잠시 버려라. 잠깐도 쉴 수 없는 중요한 일이란 없다. 끝없이 관심을 두어야 하는 소중한 것도 없다. 모든 걸 멈추고 여행을 가자.
가까운 곳도 좋다. 도시도, 깊은 숲도 좋다. 그저 여행을 가자. 슬슬 걸어보자. 일상의 작은 것들이 보일 것이다. 잊혀진 단어가 생각날 것이다. 잊혀졌던 시간이 떠오를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것들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을 만나자. 모두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똑같은 행복과 슬픔이 있다. 여행을 가면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고물을 모으는 짐칸에 타고 있는 아이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내가 손을 흔들면 더 세게 흔들어 준다. 먼 나라의 6살 아이와 나는 미소를 교환하며 멀어진다.
코로나가 끝나면 혼자 패키지 여행을 가자. 아무런 계획도 필요없으니 그만큼 더 훌쩍 떠날 수 있고, 여유로울 것이다. 줄을 따라 걸으면서도 혼자라서 한껏 여유로울 것이다.
여행 가는 걸 잊을 수 있으니, 한 달에 한 번은 가자. 무작정 가자. 계획따윈 필요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즐길 수 있다. 여행이 있어서 삶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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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인의 모든 글이 좋지만 산문은 더 좋다. 이번 책은 사진마저도 좋았다.
https://blog.naver.com/pyowa/222219712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