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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May 26. 2024

재료가 모두 있다면, 목수에게 무슨 고민이 있겠는가.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 서현)(1/3)

https://blog.naver.com/pyowa/223458952869


서현 교수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재밌게 읽었었다. 생각도 문장도 참 좋았다. 이번엔 서현 교수의 전통건축에 대한 책을 읽었다. 


현대 건축가도 전통건축에 대한 책을 쓰지만, 전통건축은 잘 모르는 분야이니 현대 건축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통건축을 분석하거나 미감을 써내는 에세이가 많다. 이 책은 단도직입적으로 전통건축의 방식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다. 미학과 미감에 대한 얘기는 언뜻언뜻 보일 뿐 주류에서 완전히 밀려나 있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에서 '태초에 점이 있었다'로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입체로 끌고 나가는 솜씨에 놀랐었다.


이번 책도 그렇다. 종이컵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종이컵에서 우산으로, 우산에서 기둥으로, 기둥에서 보로, 보에서 처마로, 처마에서 지붕으로 이야기가 고조되어간다. 종이컵이 마침내 집이 되어 비와 바람을 만나 좌절하고, 힘겹게 일어나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비유나 의인화 같은 얕은 수사를 쓰지 않았다. 건축의 원리와 여건의 제약, 이를 극복해야만 하는 목수의 숙명을 써냈다. 역사에 남지 못한 그들의 이름과 사라져버린 그들의 실패에 대해 공감하며 안타까워했다.


전통건축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 대부분 미적인 접근을 한다. 그래서 나는 의심했었다. 목수가 미학을 배우지 않았을 것이고, 목수간 교류도 원활하지 않았을 것인데, 왜 표현방식이 비슷할까. 목수는 자기 집을 짓는 것도 아니므로 돈을 대는 전주錢主의 의지는 절대적이다. 목수에게 미학적 식견이 깊고 넓다한들,  돈이 많이 들어가는 미적 표현에 큰 돈을 쓸 전주錢主가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의심했다. 그렇지만 나의 짧은 식견으로 아무런 단초로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돈을 얼마든지 쓸 수 있었던 남대문은 왜 우진각지붕일까. 가장 저렴했다는 맞배지붕이 종묘에 사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자는 왜 모임지붕으로 할까. 주심포 양식과 다포식 양식은 어떻게 다를까. 단청은 너무나 비용이 컸다는데 단지 아름다음때문에 단청을 쳤을까. 무엇보다 처마 밑의 화려한 포작은 꾸밈인가. 꾸밈이기엔 너무나 화려하고 공이 많이 들어가 보였다. 이 책은 가혹한 집짓기 조건과 끊임없는 목수의 돌파과정을 보여준다. 적군 뿐만아니라, 추위와 배고픔과 질병에도 싸워나가야하는 장군처럼, 처절히 나아가는 목수가 있다.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고, 청년이 전사가 되어 전장을 떠도는 것만 같다. 읽는동안 목수의 실패와 치열함이 때론 안타까웠고, 때론 뿌듯했다. 강약의 긴장이 쉼없이 반복되었다.


가지고 싶은 병력, 무기 다 가지고 싸우면, 전투에 지는 장군이 있겠는가.

갖고 싶은 재료, 필요한 도구, 유능한 일꾼이 있으면, 목수에게 무슨 고민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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