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 - 박완서
https://blog.naver.com/pyowa/223678116283
1988년 남편이 암으로 죽었다. 박완서 작가는 슬픔에 잠겼다. 4개월 후 의대를 졸업한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 박완서 작가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왜 일어난건지, 왜 자신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수도원에 머물렀다. 신을 부르고, 원망하고, 다시 부르길 반복했다. 문장마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마주한 작가가 놓여 있다.
태어남에 이유가 없듯이 죽음도 어느순간 나타난다. 아무리 신에 기대어도,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해도 피할 수 없다. 설명되지도 않는다. 고난의 이유를 알 수 없다. 신이 원망스럽다. 전지전능하다니 더욱 원망스럽다.
절망속에서,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나를 움직일 수 있는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은 무섭고도 무서운 것이다. 소중한 나를 잃게 될까 안절부절하게 된다. 나를 통제할 수 없을까 건물난간, 다리위를 피한다.
박완서 작가는 죽고 싶었다. 거기에 어떤 의심도 없었다. 13층 난간에 섰을 때 박완서 작가는 흠칫 뒤로 물러섰다. '살고 싶은 건가'
절망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어본 사람은 좌절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볼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진심과 그들의 최선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절망속에서는 위로의 말과 글보다 목으로 넘어가는 따뜻한 밥알의 느낌과 땀 흐르고 숨 차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절망속에서도 희망이 자라나며, 죽음의 유혹속에서도 생명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13층이다. 뛰어내릴 용기가 없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뛰어내리기를 꿈꾼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떠다밀지 않는 한 아무도 임의로 그걸 뛰어넘지 못하고, 일단 뛰어만 넘으면 그 거리는 무한대로 멀어지고 만다. 발밑이 짜릿짜릿해져서 조금 뒤로 물러선다.
나는 살고 싶은가? 불안했다.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
한 인간이 죽을 때에는 그와 함께 그의 첫눈도 녹아 사라지고, 그의 첫 입맞춤, 그의 첫 말다툼도......이 모두를 그는 자신과 더불어 가지고 간다. 하나의 죽음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사랑과 기쁨, 고통과 슬픔, 체험과 인식 등, 아무하고도 닮지 않은 따라서 아무하고도 뒤바뀔 수 없는 그만의 소중하고도 고유한 세계의 소멸을 뜻한다.
자아란 기억인 것을.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