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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아. 엄마는 그런 기분이 들어.

오천 번의 생사, 미야모토 테루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755840912


신형철 평론가가 읽어준 '밤 벚꽃'을 듣고 미야모토 테루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10년은 된 일이다. '환상의 빛', '금수', '흙탕물 강', '반딧불 강', '오천 번의 생사'를 읽었다. 모두 죽음과 설명할 수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이 정리되어 설명된다면 그건 가짜다. 모두 처음이라서 당황하며, 흔들리며 살아간다. 처음이므로 다른 삶을 알 수 없다. 오직 자신의 삶이 있을 뿐이다. 죽음과 삶은 순간이므로, 순간순간이 오로지 자기 몫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소중한 삶의 일부다.


삶과 죽음에 무슨 목적이 있을 리 없다. 무한이 반복된다해도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삶은 안타깝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화장대에서 눈썹을 그린다. 무심히 그러나 진지하게 말한다. "너무 걱정하지마.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으니까. 엄마는 정말 그런 기분이 들어." 40대에 읽었을 때와 50대인 지금 읽은 느낌이 다르다. 죽음을 앞두고도 가느다란 눈썹을 그리는 엄마의 마음이 알 것도 같다. 품위 있는 모습으로 살고 싶고 기억되고 싶은 마음은 진지할 수밖에 없다.


죽음을 앞둔 에미 히로시는 편지를 쓴다. 주인에게 토마토를 사달라고 부탁한다. 죽음을 앞둔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순 없었다. 에미 히로시는 토마토를 품고 편지를 쓴다. 답장을 받을 때까지 살아 있지 않을 거라고 느꼈을 것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에게 하고 남기고 싶은 말을 썼다. 주인은 에미 히로시의 편지를 부치러가다 편지를 잃어버렸다. 그는 물러진 토마토를 안고 무엇을 떠올렸을까. 죽음을 앞두고 그때의 그녀를 떠올렸을 것이다. 설레며 만났던 순간과 싸늘하게 헤어진 아픔이 떠올랐을 것이다. 고마웠다고, 미안하다고, 행복하라고 적어내려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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