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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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이청준 선생의 '눈길'을 읽었다. 읽으면 눈물이 나고, 1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읽으니 눈물이 난다. 문체, 인물, 구성 모두 세련되었다. 책을 읽고 있다는 것마저 잊게 만든다.
도회지에서 공부하는 고등학생 아들은 집이 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도청소재지에서 1시간 버스를 타고, 다시 1시간을 더 걸어 집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팔린 텅빈 집을 쓸고 닦으며 기다렸다. 망해버린 집안과 돈 없이 공부할 아들 생각에 갑갑하고, 폭폭하다. 아들에게 저녁을 해먹이고, 새벽 다시 눈길을 걸어 면소재지의 차부까지 걸어가는 이야기다.
내가 자린 시골도 면소재지 터미널을 '차부'라고 불렀다. 소설속 주인공처럼 나도 고등학교를 도회지에서 다녔다. 버스 타는 곳까지 한참을 걸어가야했고,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면소재지 '차부'에 도착했다. 직행버스를 타고 1시간 가면 군청이었고, 군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고속버스가 다니는 시청으로 가야했다. 시골 집부터 서울 자취방까지 8시간이 걸릴때였다.
소설 속 어머니는 산길로 눈을 밟으며 돌아온다. 새벽이라 아들과 어머니와 발자국이 그대로다. 쓰러지고, 버둥거리고, 서로 일으켜 주던 자국이 보인다. 어머니는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아들의 흔적을 밟아가니 서럽지 않은 발자국이 없다. 발자국마다 눈물이 떨어진다. 저고리로 눈물을 훔치며 서러운 새벽길을 걷는다.
소설을 읽으며 남매 둘을 두고 내려갔을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올라오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하라며 DDD공중전화요금 삼백원씩을 동전으로 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내려가시며 석유곤로 조심하고, 연탄 잘 갈으라며 몇번이고 당부하셨다. 없는 살림에 자취비는 어떻게 마련하셨까.어머니는 가끔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어린 너희들을 절대로 서울로 보내지 않을 것'고 말씀하신다.
내려가는 버스에서는 자취방 아이들 생각뿐이셨을 것이다. 한 달 동안 어찌살아갈까 걱정되고 갑갑했을 것이다. 어쩌지 못하는 상황, 팍팍한 삶에 눈물도 흘리셨을 것이다. 소설 속 어머니와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부디 몸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눈길' 중 일부, 이청준--
"간절하다뿐이었겄냐.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만 싶었제....하다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울기만 했겄냐. 오목오목 디뎌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만 빌고 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