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계절, 정은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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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먼지, 장마, 태풍, 폭설 이런 단어는 뉴스가 된다. '봄여름가을겨울'이란 말은 이제 쓸 곳이 없는 단어가 되었다. '계절'은 너무도 큰 말이어선지 어디서도 안 쓰게 되었다. 덩달아 '계절을 탄다'는 말도 듣기 어렵다.
대학시절 흔히 하는 질문이 있었다. '넌 어떤 계절을 타니?' 나도 여러번 들었다. 느낀 적이 없었고,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는데, 나에겐 모든 계절이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났다. 젊음이 지나보고 알았다. 난 봄을 탄다. 봄에 설레었다. 꽃에도 설레었고, 바람에도 설레었고, 설레인 덕에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이대로 끝날 수 없다는 가을의 쓸쓸함 보다는, 무언가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이 좋았다.
곧 3월이니, 조금 있으면 봄이다. 봄은 단장을 마치고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조금씩 신호를 보내다 어느순간 봄바람을 날릴 것이다. 그때서야 알아챈다. '어. 바람냄새가 달라졌어'
더위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그래선지 막연하다. 코속까지 들어오는 열기, 흔들거리는 아스팔트, 진초록 가로수, 눈부신 하늘, 소나기가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질감을 찾자면 소나기다.
'마사오카 시키'는 병상에 누워 움직이기 어려웠다고 한다. 밖을 내다 볼 수도 없었다. 그는 들리는 소리를 관찰하고 생각하고 상상했다. 저녁 내내 들리는 소리를 적고, 적으며 상상했다. 소리의 질감은 또 어떠한 것일까.
가을은 차분하고, 분주하다. 무대에 막이 내리듯, 등장했던 많은 것들이 퇴장한다. 시야가 멀리 트인다. 굴러다니던 낙엽이 바스러져 가루가 되어간다. 어느순간 겨울과 조금씩 섞여간다.
여름이 시끄러운 소낙비라면, 겨울은 눈 쌓인 아침의 고요함이다. 방문을 열면 마당, 마을, 앞산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겨울은 밤새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낮에 내리는 눈도 소리없긴 마찬가지다. 조용히 내린다. 함박눈이 올때 쪼그려 앉아 눈을 본다. 작은 결정이 보인다. 가만히 들어보면 눈이 눈에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 작은 소리로 착- 착- 착- 들린다. 분명 얼음알갱인데, 막 쌓인 눈은 만지면 포근하다.
짧은 글마다 작가의 사진과 생애를 짧게 요약한 글이 있다. 문장 하나마다 힘들었을, 고뇌했을, 슬퍼했을 작가가 그려진다. 글 보다도, 작가 소개가 더욱 실감나고 절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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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봄날의 비>
초봄에 오는 비는 차갑다. 또 장맛비는 너무 우울하다. 하지만 그사이에 낀 늦봄 비는 밝고 쾌활하며 따뜻함으로 가득 차서 은빛으로 반짝인다. 초봄 비는 말없이 세상을 적시고, 이맘때 비는 소곤소곤 소리를 내며 내려온다.
청개구리는 광대처럼 달랑 옷만 입은 채로 어디라도 나가고, 달팽이는 성지순례처럼 자기 짐을 몽땅 싸서는 등에 짊어지고 나간다. 두 녀석 다 마음껏 비를 즐기고 맛보며 노니느라 여념이 없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비가 언제 그칠지 모를 일이다.
(작가의 계절, 스스키다 규킨)
https://youtu.be/B7Djj9ctXrU?si=LQB8hKeATyG6i52Y